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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쿠바 사이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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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쿠바 사이의 악연

‘카리브해의 진주’로 불리는 섬나라 쿠바는 제1차 항해 중이던 콜럼버스가 1492년에 발견함으로써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들었다. 1511년, 스페인은 벨라스케스를 파견하여 쿠바 전 지역을 정복하고 식민지로 만들었다. 담배, 사탕수수 농장 등지에서 혹독한 식민통치에 시달리던 원주민은 거의 멸종당하고 16세기부터는 아프리카에서 수입된 흑인 노예들이 원주민을 대신하여 노동력을 제공한다. 19세기까지 이곳에 수입된 흑인들은 100만 명에 이르렀고, 이 흑인들은 스페인 본국의 가혹한 통치에 맞서서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다.

  19세기 초, 미국 독립전쟁의 영향으로 대규모 흑인 반란이 일어난 후, 점차 노예제도의 폐지와 독립을 요구하는 세력이 확대되어 1868년부터 10년간 제1차 독립전쟁이, 그리고 1895년에는 쿠바 혁명당의 호세 마르티를 중심으로 제2차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2차 독립전쟁 중인 1898년, 미국이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전쟁은 4개월 후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스페인은 쿠바의 독립을 인정하였으나 쿠바에서는 이후 3년간 미국의 군정이 실시된다. 군정 기간 동안 제정된 쿠바의 공화제 헌법에는 미국의 내정간섭과 군사 기지 설치를 인정하는 조항이 추가되어 쿠바에 미 해군기지가 건설되었다.

  1902년, 미국의 군정이 종결되고 쿠바에 공화제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군정 기간 동안 쿠바 경제의 중추적 기반은 미국 자본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정치적으로도 독재, 부패정치의 혼란이 반세기 가량 계속되었다.

  1959년, 독재자 바티스타에 맞서 싸우던 피델 카스트로는 무력 투쟁을 전개하여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쿠바 내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다. 그는 농지개혁법을 발표하여 쿠바에서 미국 자본이 장악하고 있던 대지주의 토지와 미국계 기업의 대농원을 접수했으며, 1960년에는 대기업국유화법으로 쿠바 내 미국의 정유회사를 국유화하고 이어 쿠바 내 모든 미국자산을 국유화해 버렸다. 이를 좌시하고만 있을 미국은 아니었다.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으로 성공한 쿠바 혁명에 불안을 느낀 미국은 1961년 1월에 쿠바와 국교를 단절했고, 같은 해 4월에는 망명 쿠바인으로 조직된 반 카스트로 군을 침투시켜 쿠바 침공을 시도했으나 3일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쿠바가 미국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 때는 다음해에 맞이한 ‘쿠바위기’의 순간이었다. 쿠바는 미국과 국교 단절 이후 구 소련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쿠바가 소련의 탄도미사일을 자국에 도입하면서 미사일 발사대와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1962년 10월, 이 사실을 확인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강경하게 맞서기로 결심하고 서방 언론에 ‘소련이 쿠바에다 서반구에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건설 중’이라고 공표했다. 이어서 미국은 쿠바를 국제사회에서 격리시키기로 선언하고 전군에 동원령을 내려 쿠바를 공격할 준비를 갖추었다.

  미국, 소련, 쿠바가 얽혀 핵전쟁이 야기될 뻔한 일촉즉발의 위기에 유엔에서 긴급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되고 세 나라의 대표들은 열띤 입씨름을 벌였다. 마침내 소련의 흐루시초프는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쿠바 내의 미사일을 철거하고 쿠바를 향하던 소련 선단을 철군시켰다. 이 사건 후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화해무드가 조성되었지만 쿠바와 미국은 틈이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미국은 경제 봉쇄 조치로 쿠바에 보복하면서 끊임없이 카스트로 정권의 전복을 시도했다. 쿠바는 구 소련과 동구권과의 물물교환식 무역으로 만족해야 했다. 1980년대 말,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쿠바는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한다. 구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교역이 중지되자 원료를 구할수도 없고 제품을 내다팔 수도 없게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의 근간인 배급제가 뿌리까지 흔들리자 한 해에도 수만 명에 달하는 쿠바인들이 보트에 의지해 미국으로 탈주했다. 미국은 쿠바 이민을 원칙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살아서 미국 해안에 도착하는 쿠바인’들에 한해 거주 권한을 부여했다. 한편 경제제재 조치는 계속되어 1996년에는 쿠바와 거래하는 외국 기업의 경영진과 주주, 그리고 그 가족까지 미국 입국을 불허하는 ‘헬름스 버튼법’을 제정해 쿠바를 압박했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오히려 카스트로의 권력 기반을 튼튼히 만들어주는 역효과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인 이익도 얻지 못했다. 40년간 쿠바를 통치하고 있는 독재자 카스트로는 쿠바에서 아직도 80% 이상의 지지를 얻는 인기 정치인이다. 미국은 쿠바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고자 애썼지만 유엔에서는 반대로 쿠바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 철회 요구안이 1992년부터 1999년까지 8년을 연속하여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되어, 미국은 ‘역고립’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미국이 최근 40년 만에 쿠바와 항공편을 재개하고 쿠바 관광을 허용하는 등 유화정책을 보인 것도 역고립을 피하기 위한 제스처로 보인다.

  플로리다 해협을 끼고 미국의 바로 아래에서 사회주의 정책을 고수하는 쿠바는 지금도 여전히 미국의 눈엣가시요, 두통거리다. 쿠바 입장에서는 미국이 ‘살인적인 경제 정책으로 쿠바 인민들의 숨통을 조르는’ 덩치 큰 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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