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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꺼리

이제 故 김대중 대통령을 기리며 - 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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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故 김대중 대통령을 기리며
(서프라이즈 / 이해찬 / 2009-08-21)


꼭 86일이 지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86일 만에 김대중 대통령이 또 서거하셨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사랑으로 올 여름을 다 보내고 있다.

두 분을 모시고 함께한 30년이 한순간처럼 지나갔다. 어찌 보면 꿈만 같다. 두 분은 어떤 분이셨는가. 내가 30년간 모신 김대중 대통령은 참으로 진지하고 단호한 분이었다. 그러면서 여러 차례 사선(死線)을 넘으셨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다정하고 자상한 분이셨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으로 소박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그러면서도 법률을 공부한 변호사답지 않게 과감하고 결연하셨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이 끝난 뒤 나는 한명숙 총리, 문재인 실장 등과 함께 김대중 대통령께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나는 전생에서 형제였던 것 같다. 둘 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목포상고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내가 형인 셈이다. 노 대통령은 젊었을 때 혼자 공부를 열심히 해서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사업을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둘 다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잘 경영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전생에 형제였던 두 분이 이 세상에서 의형제처럼 꿈을 펼치시다가 이제 하늘나라에서 다시 형제로 환생하시게 되었다. 두 분은 한국 현대사에서, 아니 1800년 서거하신 정조 대왕 이래 200년이 넘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자유, 인권, 민주, 평화의 가치를 진정으로 추구하셨던 대통령이셨다.

두 분은 현 정부가 들어선 뒤 민주주의, 민생경제, 남북관계가 갑자기 악화되는 것을 크게 걱정하셨다. 그중에서도 특히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대치 상황으로 악화되어가는 것을 걱정하셨다. 그래서 8·15 광복절쯤에 두 분이 만나 6·15, 10·4 정상회담 합의사항을 현 정부가 이행하도록 함께 촉구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노대통령이 서거하시는 바람에 김 대통령은 자신의 반쪽이 무너져 내린 것 같다고 통탄하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으셨다. 그 후로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셨고 끝내 운명하시고 말았다.

두 분은 끝내 못 만나셨다. 대신 사모님 두 분이 김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세브란스 영안실에서 만나셨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 오열하시는 두 분 사모님의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내 가슴이 찡하고 흐르는 눈물을 가눌 수가 없었다. 한평생 정치인의 아내로서 살아온 두 분이 서로를 위로하는 심정으로 오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 정치, 정치, 그래 정치란 무엇인가?

두 분 대통령이 추구하셨던 자유, 인권, 민주, 평화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은 결국 사회정의이다. 그렇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두 분은 자신을 통째로 내던지신 것이다. 역사의 바다에. 모두가 함께 즐겁게 잘 사는 사회를 위해,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정의를 위해 내던지신 것이다.

이제 뒷일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남은 자들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연대해서 역사의 바다를 헤쳐 나가야 한다. 강물이 바다를 포기하지 않듯이 행동하는 양심으로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야 한다.

두 분의 영면을 위해, 아니 두 분의 부활을 위해 눈을 크게 뜨고 함께 가자 이 길을. 손에 손을 맞잡고.

 

2009년 8월 21일

이 해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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