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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꺼리

뿌리 찾아 몽골고원으로 향하는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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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제국 유적 집중 조사..제국 수도엔 박물관

 

(울란바토르=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50㎞ 가량 떨어진 날라이흐 시(市) 바얀 촉트. 드넓은 고원지대엔 두 마리 암수 말이 한가롭게 서로를 부비고 그 주변으론 두 무리를 이룬 양떼가 풀을 뜯는다.

저 멀리 고원이 끝나가는 지점에 야트막한 바위산이 보이고, 거기에 유목민 거주 텐트인 게르(Ger) 몇 채가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고원 한복판엔 높이 2m 남짓한 비석 두 기가 서 있고, 이를 중심으로 누군가가 어른 무릎 높이의 철망을 쳐 놓았다.

보호막이라고 하기엔 너무 허술하지만 이곳이 신성구역임을 표시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것이 분명하다. 울란바토르를 출발해 시멘트 포장길을 벗어나 비포장 초원길로 길을 바꿔 8㎞ 가량을 달려 이곳에 도착하니 기자가 포함된 일행 3명을 현지인이 반갑게 맞았다.

이름은 손도이잡(Sundoijav), 나이는 49세. 환갑을 넘긴 듯한 외모보다 훨씬 젊은 실제 나이가 이곳이 초행길인 일행을 놀라게 했다. 이곳을 안내한 몽골국립대 박사 출신이자 몽고사 전공인 김장구 동국대 사학과 강사가 전한 말에 의하면, 이 현지인은 '현장 지킴이'라고 한다.

손도이잡은 그가 사는 곳이 고원이 끝나가는 한 지점 바위산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 바위산 이름이 바로 바얀 촉트라고 했다. 그는 봄이나 여름철이면 비석 현장으로 나와 그 인근에다 게르를 마련해 놓고 양을 치는 생활을 하다가 겨울철로 접어들면 철수해 마을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는 친절하게 철망 정문을 채운 자물쇠를 열고는 일행을 안내했다. 5m 가량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선 이 두 비석이 72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 유명한 돌궐(突厥) 제국시대 '톤유쿡(暾欲谷) 비문'이다. 두 비문은 사각형으로 깎은 네 면에 각각 텍스트를 적었다. 표기는 이쪽 전문가가 아니면 도대체 읽을 수도 없는 룬(rune) 문자다. 언뜻 보면 이집트 고대문자 같기도 하다.

19세기말에 발견된 두 비문은 1세기 이상 축적된 연구 결과 별개가 아니라 연속적인 텍스트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비문 하나로 하고 싶은 서사(敍事)를 다 풀어놓지 못하자 다른 비문 하나를 더 세워 나머지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비문의 글씨 상태 또한 1천300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견뎌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선명했으나 아무도 텍스트를 읽을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이 비문은 그 현재의 명칭 그대로 돌궐제국 재상을 지낸 톤유쿡의 업적을 기록한 것이다.

비문에서 톤유쿡은 빌게 카간(毘伽可汗)을 돌궐왕으로 옹립하고 군권을 장악했으며, 동쪽 거란을 비롯한 주변 제민족을 격파했다고 자랑한다.

한데 이 비문에서 수백m 떨어진 지점에는 주변 풍광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임시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비록 창고 같은 임시 벽돌시설이긴 했지만 톤유쿡 비문 주변부에서 발견된 각종 석상(石像) 서너 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 임시건물은 터키 정부가 세웠다. 터키는 조만간 톤유쿡 비문 일대 유적 발굴을 시작하고 현장 박물관을 세워 성과물을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니 임시건물은 박물관 건립을 위한 사전 포석인 셈이다.

이 곳에 대한 터키 당국의 집요한 관심은 비석 정문에 큼지막하게 세운 안내판에서도 확인된다. 안내판은 세 구역으로 나눠 각각 터키어, 몽골어, 영어로 텍스트를 적어놓았다. 이 안내판을 세운 주체는 '터키 국제협력개발처'(Turkish Internatoinal Cooperation and Development Administration.TICA).

티카(TICA)를 앞세운 터키 정부는 발굴조사와 현장박물관 건립에 앞서 다음달에는 울란바토르 서쪽 약 400㎞ 지점에 위치한 돌궐제국 수도 카라코름에 돌궐박물관을 개관할 예정이라고 몽골측 파트너인 몽골고고학연구소 바이에르 박사가 말했다. 이곳에는 돌궐제국의 위용을 증언하는 고비(古碑)로 알려진 빌게 카간과 퀼 테긴 비문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두 비문은 고구려를 지칭하는 표현이 보인다고 해서 국내 고대사 연구자들도 매우 주목하는 유물이기도 하다.

바로 이곳을 터키팀이 발굴하고 그 성과물을 전시할 박물관 오픈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터키 정부는 이에 맞춰 카라코름 일대 도로 50㎞ 가량을 포장했다고 한다. 자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몽골고원에서 각종 문화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몽골고고학연구소 바이에르 박사 전언에 의하면 터키가 몽골지역 돌궐 유적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몽골측과 공동으로 돌궐시대 각종 유적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터키팀이 이룩한 조사성과는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몽골국립역사박물관 진열실이 증명한다. 이곳 1층 '몽골 고대사실'을 차지한 가장 화려한 유물은 바로 터키 발굴팀 손길을 통해 빛을 보았다. 이곳에는 광개토왕비를 연상케 할 만큼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빌게 카간 비문이 복제되어 전시 중이고, 나아가 빌게 카간 얼굴을 형상화한 대리석 조상 출토품도 관람객을 맞고 있다.

터키는 왜 몽골고원에 이토록 집착할까? 말할 것도 없이 현재의 터키는 돌궐이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터키(Turkey)라는 말 자체가 중국에서는 돌궐(突厥)로 표기하는 '투르크'(Turk)에서 유래했다. 6세기 중반 무렵 몽골고원에 등장한 돌궐은 이후 2세기 가량 동북아 북방을 호령하다 아나톨리아 반도로 들어가 오스만터키 제국을 세움으로써 오늘날 아나톨리바 반도의 '터키' 역사 서막을 열었다.

따라서 그들의 몽골고원에 대한 집착은 조상을 찾아가는 여정인 셈이다. 마치 우리가 광개토왕비문을 찾아 만주로 가듯, 터키인들도 그들 조상의 흔적을 찾아 몽골고원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2007.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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