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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꺼리

곡물 값 폭등 '대재앙'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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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에 이코노미21에 나온 기사인데 많은 부분이 요즘 상황을 미리 내다 봤네요...


세계적으로 육류 소비가 늘어나는 것도 걱정스럽다. 2킬로그램의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만들려면 각각 14킬로그램과 8킬로그램의 곡물 사료가 필요하다. 인디펜던트는 세계 곡물 생산량의 3분의 1 이상이 가축의 먹이로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굶어죽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먹을 곡물을 가축들이 먹어치우고 있는 상황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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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AP연합
 
 
 
이상기온, 자연재해로 해마다 줄어 … 카길 등 곡물 메이저 장난질도 한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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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이요?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누가 옥수수 농사를 지으려고 하겠습니까. 이미 수입 옥수수 가격이 국산 옥수수의 5분의 1 가격입니다. 미국에서 배 타고 건너온 옥수수 가격이 그렇다는 이야긴데 물류비용을 빼고 나면 실제 산지 가격은 훨씬 더 싸다는 이야기죠. 이건 도저히 경쟁이 안 됩니다.”
농협중앙회 안성교육원 엄태범 교수의 이야기다. 국제 곡물, 특히 옥수수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고 있는데 대안이 뭐냐는 질문에 엄 교수는 지극히 상식적인 답변을 했다. 비행기로 씨를 뿌리고 인공위성으로 관리하는 미국과 비좁은 밭에 하나하나 사람이 달라붙어서 손으로 관리하는 우리나라는 생산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에서 옥수수 농가에 보조를 해줘야 될 텐데 그럴 여유도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설령 보조를 해준다고 상황이 바뀔까요? 우리나라 옥수수 재배 농가들이 수입 옥수수보다 더 싸게 옥수수를 만들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이 또 뭐가 있겠어요? 없습니다. 손가락 빨면서 기다리는 수밖에요.”
최근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를 인용해 앞으로 30년 동안 심각한 식량 위기가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곡물 생산량은 20억톤 수준으로 지난해 23억8천만톤에서 15.9% 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2004년 26억8천만톤과 비교하면 무려 25.4%나 줄어드는 셈이다.
미국 농림부의 전망은 더 좋지 않다. 올해 곡물 생산량이 19억8천만톤으로 5,800만톤 가량 수요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이런 수요 공급 불균형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식량회의가 처음 결성된 1970년대에는 공급 부족이 3차례 밖에 없었는데 최근에는 7년 동안 6차례나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옥수수 등 선물 가격 두 배 이상 급등

인디펜던트는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위기의식이 확산되지 않는 것은 당장 식량 수출국인 미국이나 호주 국민들에게 큰 영향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나 호주에는 아프리카나 아시시아처럼 굶어죽는 사람이 아직은 없다. 그러나 공급 부족이 계속되고 곡물 가격이 뛰어오르면 가난한 사람들부터 고통을 받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시카고 상품 거래소의 옥수수 선물 가격은 지난해 1월과 비교하면 55% 이상 뛰어올랐다. 밀은 70%, 귀리도 54% 이상 뛰어올랐다. 올해 9월 들어 10월 말까지 두 달 동안 모두 30% 이상 뛰어올랐다. 현물 가격도 마찬가지다. 한국수출입협회에 따르면 9월 기준으로 옥수수 수입 가격은 1년 전보다 20% 이상 올랐다. 밀은 0.5%, 대두는 7.6% 올랐다.
엄 교수의  지적처럼 곡물 가격 급등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곡물 소비량은 1,979만톤, 이 가운데 1,399만톤이 수입 물량이다. 자급 비율은 29.3%, 30개 OECD(경제개발국기구) 회원국들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우리에게는 가격 결정권이 전혀 없다.
쌀을 그나마 어렵게 지키고 있을 뿐, 쌀 소비량 523만톤을 빼고 계산하면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 비율은 5% 밑으로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곡물 가격이 더 치솟는다면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모두 아무런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재앙은 이미 눈앞에 다가와 있는데 아무런 대안도 없고 준비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목해 살펴볼 부분은 수입 곡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료 곡물이다. 우리나라는 사료 곡물의 거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당장 옥수수 등 곡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사육 두수가 줄어들고 육류 가격이 덩달아 뛰어오를 가능성이 크다. 축산 농가들의 피해가 속출할 것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소와 돼지, 닭들은 뭘 먹고 자라나

“농림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202만1,318마리의 소와 46만7,602마리의 젖소, 936만9,336마리의 돼지와 1억1,916만4,091마리의 닭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난해 1년 동안 먹은 쇠고기는 31만7천톤, 돼지고기는 83만8천톤, 닭고기는 38만8천톤에 이른다.
당신이 평균적인 식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신은 지난해 6.5킬로그램의 쇠고기와 17.4킬로그램의 돼지고기, 8.0킬로그램의 닭고기를 먹었을 것이다. 모두 더하면 31.3킬로그램. 흔히 식당에서 먹는 삼겹살 1인분 200그램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지난 1년 동안 157인분 정도 육류를 먹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 많은 소와 돼지, 닭들이 모두 무엇을 먹고 자라느냐다. 설마 푸른 목장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자란다고 생각하는가. 마당에 뿌려놓은 볍씨를 주워 먹고 자란다고 생각하는가. 놀라지 마시라. 이들이 1년 동안 먹어치우는 사료만 무려 2,014만톤에 이른다. 2,014만톤을 먹여 우리가 얻는 고기(육류)는 154만3천톤밖에 안 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료 소비량 2,014만톤 가운데 배합사료 소비량이 1,514만톤을 차지한다는 것도 눈여겨 볼 부분. 배합사료에 쓰이는 곡물은 모두 818만톤으로 우리나라 전체 곡물 소비량 1,979만톤의 41.3%에 이른다. 문제는 배합사료의 원료 가운데 수입 원료가 1,140만톤, 75.3%에 이른다는 것.
다시 정리하면 우리나라 전체 곡물의 41.3%를 소와 돼지, 닭들이 먹는데 그 75.3%가 수입 곡물이라는 이야기다. 원료로 쓰이는 곡물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 사료곡물 837만톤 가운데 79.2%를 차지하는 옥수수는 모두 663만톤, 그 가운데 국산은 1만3천톤밖에 안 된다.
배합 사료에 들어가는 옥수수의 자급 비율은 0.02% 밖에 안 된다. 옥수수뿐만 아니라 다른 사료 곡물도 174만톤 가운데 국산은 17만톤으로 10%에도 못 미친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사료 곡물 수입은 1980년 201만톤에서 지난해에는 818만톤으로 네 배 이상 늘어났다. 우리나라 쌀 소비량이 523만톤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쌀 빼면 곡물 자립도 5% 미만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하는 원인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올해 들어 세계적인 가뭄과 이상 고온 현상 때문에 이들 곡물의 작황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옥수수는 미국이 세계 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데 올해 생산량이 2억7,700만톤으로 지난해보다 500만톤 가까이 줄어들 전망이다. 밀은 미국과 호주가 세계 수출의 23%와 14%를 차지하는데 올해 생산량이 각각 15%와 50%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둘째, 기상이변이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SK증권 송재혁 연구원은 기상청 자료를 인용, 5월 이후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0.5~1.5도 이상 높은 고수온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이번 겨울에 엘니뇨현상까지 겹치면 내년 상반기에도 이런 이상기온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엘니뇨란 페루 부근 적도 해역의 해수 온도가 평년보다 2~3도 가량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기의 흐름에 영향을 줘서 가뭄과 홍수, 한파 등의 기상이변을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일부에서 식량 파동의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가뜩이나 호주는 올해 심각한 가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셋째, 장기적으로 중국과 인도의 인구 증가와 경제성장도 걱정거리다. 세계 인구 65억4천만명 가운데 아시아 지역 인구는 60%인 39억5천만명, 그런데 2050년이면 아시아 지역 인구만 50억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인구 증가는 식량 소비 증가로 곧 식량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적으로 육류 소비가 늘어나는 것도 걱정스럽다. 2킬로그램의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만들려면 각각 14킬로그램과 8킬로그램의 곡물 사료가 필요하다. 인디펜던트는 세계 곡물 생산량의 3분의 1 이상이 가축의 먹이로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굶어죽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먹을 곡물을 가축들이 먹어치우고 있는 상황이다.
넷째, 가뜩이나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데 곡물로 에너지를 만드는 바이오 에탄올이 큰 인기를 끌면서 곡물 수요가 크게 늘어난 때문이다.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서 석유를 대체할 무공해 에너지 자원으로 바이오 에탄올이 주목받고 있는 것. 옥수수와 사탕수수, 감자 등이 바이오 에탄올의 원료가 된다.
세계 에탄올 시장은 2000년까지만 해도 200억리터 정도였는데 2001년부터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390억리터까지 늘어났다. LG경제연구소 김경연 연구원은 2012년이면 바이오 에탄올 수요가 65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경우 해마다 1억5천만달러 이상을 바이오 에탄올 연구에 쏟아 붓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고유상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옥수수 생산량의 14%가 바이오 에탄올 생산에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비율은 내년이면 25%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 역시 바이오 에탄올 생산량을 지난해 100만톤에서 2010년에는 300만톤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옥수수가 곧 에너지가 되는 시대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의 연료탱크를 채울 에탄올을 만들려면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을 곡물이 필요하다. 올해 미국이 바이오 연료를 만들기 위해 소비하는 옥수수 양은 전체 곡물 수출량과 맞먹을 것 전망이다. 경제 주간지 포츈은 "이렇게 가다간 아이오와 주의 옥수수가 모두 에탄올 제조에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다섯째, 투기자본의 유입도 무시할 수 없다. 일찌감치 곡물가격 폭등을 내다본 투기자본이 몰려들어 선물 가격을 올려놓고, 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을 이끄는 이른 바 ‘웩더독’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곡물 시장은 아무리 비싸도 구매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 비탄력적인 시장이다. 원자재 시장에서 재미를 못 본 투기자본으로서는 최상의 사냥감인 셈이다.


소 값 파동 일어날 수도 있다

결국 한동안 또는 아주 장기적으로도 곡물가격 급등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당장은 밀가루 가격이 오르면서 자장면 가격이 오를 수도 있고 사료 가격이 오르면서 가축 사육두수가 줄어들고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가격이 오를 수도 있다. 비싸게라도 주고 사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엄 교수는 조만간 또 한 차례 소 값 파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축산 농가가 지나치게 많이 늘어났고 육류 가격이 필요 이상으로 낮게 잡혀 있는 상황이다. 만약 사료 가격이 치솟고 육류 가격이 올라 소비가 급감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엄 교수는 한우 쿼터제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우리는 그동안 자동차나 반도체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농산물이야 뭐 그렇게 번 돈으로 사다 먹으면 된다는 거죠. 그런데 머지않아 식량위기가 올 가능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상이변과 자연재해가 계속되고 경작 가능한 면적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단국대 환경경제학과 김호 교수의 이야기다.
김 교수는 연해주나 북한 등에 사료 작물을 심어서 들여오는 방법도 있지만 더 본질적으로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흔히 소는 제 몸무게의 7.5배, 돼지는 4배, 닭은 2배의 곡물을 먹고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이 먹을 곡물을 소나 돼지나 닭이 먹고 있습니다. 가축에게 먹일 곡물을 사람에게 먹이면 10억명이 먹을 수 있습니다.”
옥수수 박사로 불리는 경북대 농업경제학과 김순권 박사는 조금 다른 대안을 내놓았다. 마냥 손을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우리 농업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옥수수가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옥수수는 좁은 땅에서도 잘 자라고 단위면적당 생산단가도 가장 높은 작물이다.
김 교수는 옥수수 종자를 직접 개발해 베트남과 동티모르, 몽골, 캄보디아, 라오스, 심지어 에티오피아와 케냐 등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옥수수 농법을 전수해줬다. 옥수수를 심는 것이 가난과 굶주림을 벗어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북한에 옥수수 보내기 운동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는 GMO 옥수수가 아니라 무농약 무공해 옥수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알갱이뿐만 아니라 몸체까지 사료로 활용할 수 있는 옥수수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규모를 키우고 조금씩 자급 비율을 높여 나가야 합니다. 미국과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를테면 북한의 낮은 인건비로 옥수수를 키우고 우리의 쌀을 북한에 보내는 대신 옥수수를 수입해 오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크게 보면 자립비율을 높이는 대안이 된다. 김 교수는 자동차와 반도체를 팔아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 못지않게 곡물 자급 비율을 높여 외화 유출을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2003년에 중국이 옥수수 수출을 금지하자 수입 옥수수 가격이 톤당 150달러에서 200달러로 뛰어올랐던 걸 생각해 보세요. 당장 수입 옥수수를 100%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이라도 국산 옥수수 비중을 늘려가야 합니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정말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출 처 : 이코노미21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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