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7일) 노무현 대통령이 「사람사는세상」에 강금원 회장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려운 시절부터 함께 했고 참여정부 들어서도 사심없이 여러사람을 도와주었던 좋은 분이네요.. 가슴이 찡합니다.
오늘자 매일경제(뇌종양 강금원회장...2009.4.17)를 보니
강회장은 참여정부 5년동안 사업은 축소되었고 창신섬유와 시그너스 골프장도 명의상 회장일뿐 경영권을 대부분 전문경영인에게 넘긴 상태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강회장은 현재 뇌종양을 앓고 있기때문에 구속영장 실질심사때 진단서를 제출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 대통령의 글 말미에『...아는 사람들은 그의 건강을 걱정한다. 제발 제 때에 늦지 않게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하며 우려했던게 바로 뇌종양을 이야기 하는거 같습니다.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음에도.. 그리고 시기를 놓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중한 병을 앓고 있는 국민을 구속 조사하는 검찰의 행태를 보며 정말 많이 화가 납니다.
장자연리스트는 확실한 증거와 국민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출두시켜서 조사도 못하고 질질끌고 있는것과 대비되는 모습니다. 참 새우젓깔같은 세상입니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됬죠.. ㅠ.ㅠ
저 또한 노 대통령의 말씀대로 강금원회장님께서 늦지 않게 치료를 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래 글은 오늘 노무현 대통령이 올린글 전문입니다.
강회장이 구속되기 전의 일이다. 내가 물어보았다. “강 회장은 리스트 없어요?” “내가 돈 준 사람은 다 백수들입니다. 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에게는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돈을 왜 주었어요?” “사고치지 말라고 준 거지요. 그 사람들 대통령 주변에서 일하다가 놀고 있는데 먹고 살 것 없으면 사고치기 쉽잖아요. 사고치지 말고 뭐라도 해보라도 도와 준 거지요.” 할 말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나의 수족 노릇을 하던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줄줄이 감옥에 들어갔다 나와서 백수가 되었는데, 나는 아무 대책도 세워 줄 수가 없었다. 옆에서 보기가 딱했든 모양이다. 강회장이 나서서 그 사람들을 도왔다. 그 동안 고맙다는 인사도 변변히 한 일도 없는데 다시 조사를 받고 있으니 참으로 미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데 강회장이 계속한다. “지난 5년 동안 저는 사업을 한 치도 늘리지 않았어요. 이것저것 해보자는 사람이야 오죽 많았겠어요? 그래도 그렇게 하면 내가 대통령님 주변 사람을 도와줄 수가 없기 때문에 일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강 회장이 입버릇처럼 해오던 이야기다. “회사일은 괜찮겠어요?” “아무 일도 없어요. 지난번에 들어갔다 나오고 나서 직원들에게 모든 일을 법대로 하라고 지시했어요. 수시로 지시했어요. 그리고 모든 일을 변호사와 회계사의 자문을 받아서 처리했어요. 그리고 세무조사도 다 받았어요." 그래서 안심했는데 다시 덜컥 구속이 되어버렸다.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게 사업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어떻든 강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강 회장이 나를 찾아 온 것은 내가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였다. 모르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후원금은 얼마까지 낼 수 있지요?” 전화로 물었다. “1년에 5천만 원까지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로 온 사람이 강 회장이다. “나는 정치하는 사람한테 눈꼽만큼도 신세질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첫마디를 이렇게 사람 기죽이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눈치 안보고 생각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경계를 하지 않았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장수천 사업에 발이 빠져서 돈을 둘러대느라 정신이 없던 때였다. 자연 강 회장에게 자주 손을 벌렸다. 당시 안희정씨가 그 심부름을 하면서 타박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정치인이 정치나 하지 왜 사업을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 구박의 이유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직접 타박하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 나는 2000년 부산 선거에서 떨어졌고, 2002년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에는 장수천 빚 때문에 파산 직전에 가 있었다. 강회장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대통령이 아니라 파산자가 되었을 것이다. 강 회장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단 한 건의 이권도 청탁한 일이 없다. 아예 그럴만한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퇴임이 다가오자 강 회장은 퇴임 후 사업을 이야기 했다. 처음에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강회장의 생각에는 노무현이 중심에 있었고, 나의 생각에는 생태 마을이 중심에 있었다. 결국 생태마을 쪽을 먼저 하고 재단은 퇴임 후에 하기로 가닥이 잡혔다. 그렇게 해서 주식회사 봉화가 생겼다. 이름이 무엇이든 우리가 생각한 것은 공익적인 사업이었다. 70억이라고 하니 참 크게 보인다. 그런데 강 회장의 구상은 그보다 더 크다. “미국의 클린턴 재단은 몇 억 달러나 모았잖아요. 우리는 그 10분의 1이라도 해야지요.” 이것이 강 회장의 배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많은 돈을 모으기가 어렵다. 꼭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강 회장 혼자서 부담을 해야 할 형편이다. 강 회장은 퇴임 후에 바로 재단을 설립하자고 주장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좀 천천히 하자고 했다. 강 회장 한사람에게만 의지하는 것이 미안하고 모양도 좋지 않으니 출연할 사람들을 좀 더 모아서 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퇴임 후 바로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각종 조사와 수사가 시작되고,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도 시작되니 아무 일도 시작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을 모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재단은 표류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가급적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사업하는 사람들은 오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사업을 안 하는 사람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디 취직이라도 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봉하에 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봉하에 강 회장은 매주 하루 씩 다녀갔다. 그런 강회장이 구속이 되었다. 아는 사람들은 그의 건강을 걱정한다. 제발 제 때에 늦지 않게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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