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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꺼리

[섶펌] ‘운명이다’를 읽고 새로 안 사실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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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를 읽고 새로 안 사실 두 가지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06-07)


노무현은 누구에게 치를 떨었나

▲ 1988년 12월31일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전두환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발포를 ‘자위권의 발동’이라고 주장하자 평민당 이철용 의원이 뛰어나와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다.

1988년에 열린 청문회에서 전두환이 광주학살을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일장연설을 하자 평민당의 정상용 의원은 항의를 하면서 앞으로 뛰어나갔고 이철용 의원은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소리질렀다. 그러자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지도부에서는 “평민당이 과격 이미지를 다 뒤집어쓰게 생겼으니 얌전히 구경만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노무현은 통일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욕을 퍼부으면서 명패를 바닥에 팽개쳤다. 노무현은 살인마 전두환의 일장훈시에 치를 떠는 동료 야당 의원들의 분노를 정략으로 이용해먹는 자당 의원들에게 치를 떨었다. 노무현은 인간이었다.


노무현은 왜 특검을 받아들였나

노무현이 통치권자의 초법적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북송금특검을 받아들였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대북송금 이야기는 뜻한 대로 사업이 추진되지 않자 불만을 품은 현대에서 불거져 나왔다. 야당과 언론에서 주고받기를 하면서 의혹을 눈덩이처럼 부풀렸다.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특검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까지 막기는 어려웠다. 검찰 수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논리는 통치행위론이었다. 노무현은 법률가로서 통치행위론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논리를 앞세워 검찰의 수사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조건이 필요했다.

“남북 관계를 열기 위해 내가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실정법 위반이 혹시 있었다 해도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다. 법 위반은 작은 것이고 남북 관계는 큰 것 아니냐.”

노무현은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면 통치행위론을 내세워 검찰의 수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보고 동교동에 그런 뜻을 전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사전에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대통령이 몰랐다고 했으니 통치행위론으로 막을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사라졌다.

노무현은 참모가 나서주기를 바랐다.

“그렇다. 내가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모르셨다. 보고 드리지 않았다. 현대 쪽이 나중에 사업을 더 받기로 하고 그 돈을 보냈다. 합법적으로 송금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산업은행을 움직여 편의를 봐줬다. 불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불법인 줄 말면서 그렇게 했다. 법 위반 책임을 묻겠다면 책임을 지겠다. 영광으로 알고 기쁜 마음으로 감옥에 가겠다. 실무자들은 아무 죄가 없다. 똑같은 상황이 또 안다면 그때도 똑같이 할 것이다.”

이렇게 했으면 굳이 특검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노무현은 어차피 수사를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면 검찰보다는 특검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누가 수사하든 대북송금 절차의 위법성을 밝히는 데 그쳐야지 남북 관계의 근반을 해치는 데로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검찰에 수사를 맡기면 다른 곳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 검찰이 구석구석 뒤지면 남북의 신뢰가 깨질 위험이 있었다. 돈의 출처에 돈을 대면 자칫 현대의 분식회계나 비자금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었다. 검찰이 박지원 실장과 주변 인물의 비리를 캐겠다고 광범위한 계좌 추적 수사를 벌일 위험도 있었다. 노무현은 그래서 인력과 활동 범위가 법으로 제한된 특검에 맡기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고 판단했다.

노무현은 국민의 정부를 죽이려고 특검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살리려고 받아들인 것이었다. 노무현은 형이 확정되자 바로 사면했다. 노무현은 원칙주의자이기 이전에 끝까지 생각하고 끝까지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개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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