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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꺼리

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역사 - 멕시코 침략전쟁(영토확장, 그 더러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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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침략전쟁(영토확장, 그 더러운 전쟁)
 

미국의 사학자들이 멕시코 전쟁을 <더러운 전쟁> (Dirty War)이라고 부르고 있다.   미국은 독립이라던가 흑인노예 해방과 남북간에 헤게모니 쟁탈을 위한 전쟁을 해왔으나 특별한 국제적인 이해관계도 없이 오직 남의 나라의 영토에 대한 야심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은 미국 독립전쟁이후 1812년 전쟁에 이어 두 번째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영토쟁탈을 위해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고 스페인과 소규모의 전쟁은 수 없이 많았으나 오직 영토확장을 위해 국력을 총동원하여 합법적인 타 국가와 본격적인 전쟁을 벌인 것은 1812년 캐나다를 침략한 이래 이 번이 처음이었다.   미국의 일부 청교도 목사들은 미국이 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하고 엄청난 전리품을 얻게된 것에 대해 하나님이 미 국민들에게 바다에서 바다까지(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차지하도록 미국인들의 꿈을 실현시켜 주었다고 설교하고 있었다.   과연 하나님이 <미국인들이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그리고 <와스프 : 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앵글로 색슨 백인종>들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1천만 명이나 되는 인디언 원주민들을 학살>하기를 원하였을까?   하나님의 사자(使者)라고 자처하는 당시 미국 청교도 목사들의 망언 속에 당시 미국인들의 백인 우월사상의 일단을 엿볼 수 있고 그 우월사상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오늘날에도 국제외교에서 약육강식이라는 개념으로 탈바꿈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강한 나라가 영토 적인 야심을 갖고 약한 나라에 대하여 도발한 가장 정당치 않은 전쟁의 전형>이었다고 당시 젊은 중위 시절에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가 설파한 적이 있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당시 텍사스에 거주하거나 무역업을 하고 있었지만 이 지역은 분명히 멕시코의 영토였으나 미국의회는 텍사스를 미국의 영토로 편입시킨다는 병합안을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멕시코 정부는 1845년 3월에 그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시켰다.   이에 미국은 모든 전쟁준비를 완료한 후 미국의 제11대 대통령인 제임스 k. 폴크는(James k. Polk)의 명령을 받은 자차리 테일러(Zachary Tailor) 장군이 멕시코 국경으로 내려가 멕시코군을 자극하였으나 멕시코군이 이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폴크 대통령은 다시 자차리 장군에게 미군 병력을 리오그란데 강(Rio Grande River)까지 내려가라고 명령했다.   폴크 대통령은 멕시코에 대한 도발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리오그란데 강을 도하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군 병사 한 명이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폴크 대통령은 이를 멕시코 침공의 호기로 삼고 즉시 의회에 <멕시코와의 전쟁이 존재한다>라는 메시지를 통보했다.   그러자 미 상하 양원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멕시코를 공격하는 데 필요한 5만 병력을 동원하는 법안을 의결해 주었다.   미국역사상 가장 노골적인 침략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멕시코에게 아무런 하자나 잘못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영토확장이라는 야망 하나로 미국은 1846년 5월 3일 그 동안 준비된 5만 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멕시코를 침략해 들어갔다.   월등한 군사력을 앞세운 미군 병력은 그 다음해 9월8일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를 점령하여 멕시코 정부의 항복을 받아냈다.

멕시코의 영토를 강점한 것이 미국인데, 멕시코정부가 이에 대해 항의했다고 해서 미국이 멕시코 국을 침략하여 그 나라 대통령의 항복을 받아낸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이것은 엄연히 국가 해적행위 State Piracy이고 세계적인 규탄을 받아야할 것이지만 당시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던 식민주의 시대였기에 약소국가만 비통의 눈물을 씹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멕시코와 <이달고>(Hidalgo) 조약을 체결하고 멕시코 정부로부터 엄청난 땅을 양도받았다.   그 땅은 텍사스 주, 장래에 캘리포니아 주가 되는 땅, 유타 주, 뉴멕시코 주, 네바다 주, 애리조나 주와 와이오밍 주와 콜로라도 주의 상당 부분이 포함되었다.   남쪽으로는 리오그란데 강을 국경으로 정했다.   이 조약으로 정해진 국경선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멕시코는 북미 대륙의 작은 꼬리처럼 꼬부라져 내린 부분인 약소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해 즉 1847년 12월 22일 초라하게 생긴 한 젊은 하원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그가 바로 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이다.   그는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멕시코 침략에 찬성하는 분위기에도 상관 없이 옳지 않은 전쟁이었다는 것을 당당하게 밝혔던 인물로서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 한 사람으로 지금까지 미국인들의 가슴에 우상으로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 연설은 아브라함 링컨이 원에서 행한 첫 번째 연설이었다. 미국이 멕시코 전쟁 당시 인구가 흑인 노예를 포함하여 불과 천만 명 정도였는데 그 당시에 과연 지금과 같이 3억 명이 넘는 인구가 살 수 있는 광활한 토지를 필요로 했던 것일까?

아니면 선견지명이 있어 2백년 후에 있을 인구팽창을 예측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 (저자 홍윤서)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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