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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꺼리

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역사 - 청교도와 필그림스 조상들의 실상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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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메이플라워호의 허와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620년 35 명의 청교도의 좌파 분리주의자들은 자신들을 필그림스들(순례자들 : Pilgrims)라고 불렀다. 그들은 종교의 박해를 피해서 네덜란드의 <라이덴 : Lyden>으로 이주하였다. 그들은 네덜란드 언어를 몰라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들은 기술은 있으나 외국인이어서 장인 길드(Craftsmanship guild)에 가입할 수 없어 막노동으로 낮은 임금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으며, 또한 극빈생활로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네덜란드 사회로부터 격리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 신대륙으로 이주하려는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미국 역사책에 천편일률적으로 <필그림스들은 이 도시가 너무 상업적으로 발달해서 사람들이 경건한 종교적인 생활보다는 너무 현실세계에 물이 들어가고 있음을 한탄하고 자유스러운 종교활동을 위해 신대륙으로 가게 되었다>고 이유를 댄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종교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국가였기 때문에 미국역사책에 기술된 내용은 사실과 다른 것이다. 그때 마침 런던회사에서 신대륙 개척할 노동자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던 청교도들 가운데 일부인 35 명의 청교도 분리주의자들은 신대륙을 개척하는 노동자로 지원하였다. 그들은 개척단의 일원으로 메이플라워 (Mayflower)호에 타고 대서양을 건넜던 것이다. 런던주식회사의 주주들이 영리를 추구하기 위해 운영하는 주식회사가 필그림스들에게 단순히 종교적 목적으로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제공해주기 위해 그들을 고용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였다.

 여기에 미국교과서의 원문과 번역문을 싣겠다.

Because Pilgrims could not speak Dutch, the Pilgrims never felt at home in the Netherlands.
필그림스들은 네덜란드 언어를 말할 줄 몰랐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In 1619, the Virginia company gave the Pilgrims permission to settle in Virginia. A group of London merchants, hoping to earn money from the new colony, agreed to pay expenses. When the Mayflower left England in September 1620, it carried 35 Pilgrims and 67 hired workers.

1619년 버지니아회사는 필그림스들에게 버지니아에 정착하도록 허용했다. 일단의 런던 상인들은 신 개척지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필그림스들의 정착비용을 부담하는데 동의했다. 메이플라워호가 35명의 필그림스들과 67명의 고용된 개척민들을 태우고 1620년 9월 영국을 떠났다. (여기서 필그림스들도 모두 고용된 개척민들이었으나 필그림스들과 고용된 개척민들이라고 두 단체의 명칭을 구분한 것은 각기 성향이 다른 두 개의 그룹을 구분하기 위한 것 일뿐이지 필그림스들이 고용되지 않고 자비로 신대륙으로 간 것이 아니었다. : 필자주해)

The Pilgrims never reached Virginia. Strong ocean storms drove the Mayflower off course. On November 11, after 11weeks at sea, the ship dropped anchor off the tip of Cape Cod. This curved peninsula is now Massachusetts. Though the Pilgrims knew they were hundreds of miles north of Virginia, they were too tired and sick to travel farther. They decided to look for land close by to start their settlement.

필그림스들은 버지니아에 도착하지 못했다. 바다에 몰아친 모진 폭풍우로 메이플라워 호는 목적지를 멀리 벗어났다. 메이플라워 호는 11주일동안 항해 끝에 11월 11일 케이프 카드에 닻을 내렸다. 이 굴곡이 진 반도가 지금의 매사추세츠였다. 필그림스들은 그들이 버지니아로부터 북쪽으로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너무 지치고 병이 들어서 더 이상 멀리 여행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정착할 땅을 이 근처에서 찾기로 결심했다.

Not every passenger on the Mayflower was happy with the Pilgrims' decision. Some of the hired workers said that they had only agreed to settle in Virgina. to end this argument, the Pilgrims wrote an agreement called the Mayflower Compact.
It said that for the general good of the colony, everyone would go along with its leader's decisions.

메이플라워 호에 탑승한 모든 사람이 필그림들의 결정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고용된 개척민들의 일부는 그들은 버지니아에 정착하기로 동의했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분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필그림스들은 메이플라워 협약이라고 부르는 협약서를 작성했다. 그 협약서는 <집단의 보편적인 이익을 위해 모든 사람은 지도자의 결정에 따라야한다>라고 되어 있었다고 한다.

 위 글을 검토해 보면, 영국 상인들이 신대륙에서 돈을 벌 목적으로 필그림스들과 다른 개척민들을 버지니아 정착지를 개척하러 보낸 단순 개척민들이었을 뿐이었다. 영국 상인들에게는 필그림스들의 종교의 자유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악천후로 회사가 그들을 버지니아 해안이 아닌 지역에 착륙시킨 잘못은 있지만 필그림스들 자신도 회사에 고용된 개척민의 의무를 다 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일반 개척민들은 버지니아로 가겠다고 주장했는데도 필그림스들은 그들이 버지니아로 가는 것을 반대하고 그들을 소위 <메이플라워 협약>이라는 내용의 새로운 협약서를 써서 일반 개척민들에게 이에 동의하도록 만들어 일반 개척민들이 그들의 고용의무를 이행하려는 결심을 방해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67명의 대부분의 일반 개척민들은 원래의 근로계약 조건대로 버지니아로 떠났다고 한다. 필그림스들은 런던주식회사와의 고용계약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욕심대로 메사추세츠에 정착하고 말았다. 그들은 런던주식회사가 메이플라워호의 선주에게 지불한 많은 비용도 갚지 않은 데 비해 일반 노동자들은 원래 계약대로 버지니아로 갔다고 한다.

 필그림스들이라고 불리는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한 것은 제임스타운이 설립된 지 10여 년 후인 1620년 11월11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인들이 주장하고 또 미국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에 1620년에 미국인의 조상인 순례자들이 신대륙에 처음으로 착륙하였다고 주장하던 시기에는 이미 수 천 명의 이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순례자들을 태운 메이플라워호는 폭풍우를 만나 배는 방향을 잃고 해안을 따라 1개월간이나 표류하다가 12월 21일 무시무시한 항해 끝에 간신히 케이프 카드에 상륙하였다. 캐이프 카드(Cape Cod)에서 잠시 탐사한 다음 다시 1개월간 항해를 계속하다가 12월 16일 파도가 잔잔하고 배를 접안시키기에 적합한 넓은 해안을 발견하고 메이플라워호의 스미스 선장의 지도에 표시된 플리머스(Plymouth)임을 발견하고 여기에 닻을 내렸다.

 그들은 악천후로 계약된 버지니아에서 수백 마일을 벗어난 플리머스에 착륙했다. 필그림스들은 장기간의 항해로 몹시 지쳐 약속된 버지니아로 가지 않았으나 대부분의 다른 67 명의 이주자들이 계약조건대로 버지니아로 떠났다. 플리머스에 잔류한 이주자들은 이주한 첫해에 이주자의 거의 절반이 추위와 질병으로 죽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영국회사의 투자지원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주자들의 건강과 경제상태는 향상되었다. 필그림스들은 그들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인디언들과 평화협정을 맺고 그들의 거주지를 방어하는데 소요되는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에 강력하고 안정된 경제를 구축하는데 시간을 쏟을 수 있게 되었다.


"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 (저자 홍윤서)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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