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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꺼리

The tragedy of the commons (공유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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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gedy of the commons 는 William Foster 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이며. 그 후 1983년 Garrett Hardin 이 Science 지에 발표한 에세이를 통하여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유명해진 용어이다.    

이 개념은 무한한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지닌 개인들이 제한된 자원을 지닌 사회에서 함께 모여 살때, 결국 공동의 파국은 불가피 하다는 내용이다.

Handin 은 영국의 축산산업을 예로 들어 분석을 시도 하였다.    예를 들어  100 마리의 양을 기를 수 있는 제한된 공유지에서, 100 마리 이상의 양을 기르면 결국 목초지는 over grazing에 의해 재생산이 되지 못하고 점차로 황폐해져 간다.      그러한 공유지에 열명의 축산업자가  각각 10마리의 양을 기른다고 하자.

모든 개인축산업자는 자신이 한마리의 양을 더 기르는 순간, 공유된 목초지는 그만큼 황폐해 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개인축산업자들은 각각  보다 많은 양을 기르기를 선택한다.

그 이유는, 그가 한마리의 양을 더 기를때 그가 보는 손해는 1/100 에 해당하는 목초지의 황폐화 이지만,  한마리의 양은 그에게 1/10 에 해당하는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결정은 다른 개인들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메캐니즘이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하다.   결국, 모든 개인축산업자들은 각자 자신이 사육하는 양의 마리수를 증가시킬 것이며,  그 증가된 수의 양은 목초지를 가속적으로 황폐화 시켜, 결국 축산산업 전체가 파괴된다는 이론이다.    결국 개인적인 차원의  합리적인 판단에도 불구하고,  그 개인들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전체의 이익을 파괴함으로서 결국 공멸을 자초한다는  개념은 아래에 인용된 그의 한 문장에 함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Therein is the tragedy. Each man is locked into a system that compels him to increase his herd without limit—in a world that is limited. Ruin is the destination toward which all men rush, each pursuing his own best interest in a society that believes in the freedom of the commons. Freedom in a commons brings ruin to all.


뒤늦게 The tragedy of the commons 의 비유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우리들이 현재 격고 있는 생태계의 위기의 불가피성을 간단명료한 논리로 예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의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이 비유가 함의하는바는 심오하고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Hardin 이 주장하는바는  현대자본주의의 기초가 되고있는 자유시장이론의 기본전제를  정면으로 반박하고있기 때문이다.       Adam Smith 의 자유시장론은 무한한 개체이익을 지닌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할때,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이 동시에 극대화되는 지점에서 조정된다 는 낙관적인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현시점에서 격고 있는 생태계의 위기는 무절제한 자유시장이론의 낙관적 가정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개인 각자가 자신의 개체이익을 극대화 시킬때, 그 모든 개인들의 존재조건인 생태계가 파괴됨으로서  결국 공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라는 하나의 생태계는 무한한 자원이 아니라 유한한 자원이고 , 열린 계가 아니라 닫힌 계이기 때문이다.

Hardin 의 논문이 제기한 일견 단순한듯 보이는 개인이익과  전체이익 (혹은 공동이익)의 충돌의 문제는 인간의 정체성문제와 직결되는 철학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독립된 개인으로 존재하는가?
사회는 독립된 개인들의 총합(sum total)에 불과한가?    
그렇다면, 독립된 개인들이 모여사는 사회에서 다양한 개인들간의 공동의 이익을 추출해 내는것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공동이익을 추출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공동이익을 지켜나갈 수 있는 현실적인 메캐니즘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의문점에 관해 논하고, 대답하기 전에 우리는 집고 넘어 가야할 한가지 전제가 있다.    우리자신이  “자신을 정의하고 규정한다는 행위”의 의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우리가 가한 분석이나 해석 혹은 정의에 의해  그 성질이 바뀌어 지는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스스로 그러할 뿐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사유와 규정을 하는 경우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모든 인문과학적 논의는 그 저변에 우리 자신의 희망과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해석과 분석을 통해, 이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와  의미를  창조해 나가고, 또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특이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투사시킨 자신의 이미지를  뒤딸아가 그 이미지를  현실화 시키는 자기투사실현체라고 말 할 수 있다.


일견  사변적 놀음으로 보이는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철학적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그러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스스로를 규정함으로서 이 현실세계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제기된 몇가지 문제는 인간의 존재양식과 직결되는 문제로서, 어떤 객관적인 답이나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 의문점들이다.    인간이 개인으로서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개인과 개인간의 관계에서 각자의 개인성은 어떠한 영향을 받나?   그러한  의문에 답을 할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 답을 하는 행위자체가  우리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주관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작금, 현 인류에게 시시각각 닥쳐오는 생태계의 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한번 우리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려온 우리자신의 자화상을  한번 고쳐 그려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출 처 : 서프라이즈 (문화예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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