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그것이 알고 싶다 (1): 3년이 1년으로 줄어든 까닭은?
김 태 동 (성균관대)
토요일 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습니다. 참극을 당한 분들에게는 매우 미흡한 부분이 있었겠지만, 그런대로 일부나마 도시재개발의 피해자들에 대하여 취재한 노력이 보이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전날 같은 TV의 대통령 원탁대화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 방송이 있는지 사전에 알지도 못했고, 알았어도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원탁대화를 보도한 신문보도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신문이 보도하는 내용의 일부가 저를 또 아고라로 이끌었습니다. 이렇게 아고라로 저를 이끄는 데에는 항상 정부와 대통령이 도와주십니다.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제가 알고 싶고, 많은 아고라인들도 알고 싶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여러분의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려 합니다.
“한국이 내년에 가면 가장 먼저 회복한다고 외국도 우리도 보고 있다”고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다는데, 외국의 어디서, 또 국내의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무슨 근거로 한국이 내년에 경제위기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극복하는 나라가 된다고 하셨는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작년초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타 잿더미로 되더니, 한국은 결국 제2 외환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금년초 일본의 제국주의 군대가 주둔하던 서울 용산에 70대 어르신을 비롯한 중산층과 경찰등 6명이 죽는 참극이 일어나서 사회와 경제문제가 더 가중되고 있는데, 어떻게 2010년에는 세계 제1이 된다는 것인지 불길한 예감이 스쳤습니다. 용산에 사령부를 둔 일본군인들에 쫓겨나 만주벌판에서, 또 이역만리 여러곳에서 수십년 광복운동을 해야 했던 우리의 선조들이 용산의 참극과 그 뒤의 편파 수사에 대하여 어떤 판단을 하실까? 그렇게 하는 정부가 우리 조국의 경제를 얼마나 2009년에 더 망쳐 놓을까 걱정됩니다.
어느 나라가 한국처럼 30년에 한 번씩 대도시의 주택과 건물을 지었다 부쉈다 하면, 150년에 한번씩 그렇게 하는 나라에 비하여 건설업의 GDP성장기여도가 다섯배 높아질 것입니다. 건설업체 사업물량도 다섯배 많아지구요. 그러나 그런 성장은 녹색성장이 아니라 회색성장이고, 죽음의 성장이고, 따라서 지속가능한 성장이 아닙니다.
설이 지나고 며칠밖에 안 지났습니다. 새해가 문제이지 2010년은 아직 너무 많는 날이 남아 있습니다. 금년에 어떻게 되느냐, 그것도 지금, 이달에 어떻게 되느냐를 기업인이든 봉급생활자든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년에는 어떠냐? 그것이 알고싶다”고 그들은 기대하면서 원탁대화’를 보다가 상당수가 채널을 바꾸었을지 모릅니다.
내년에 경제회복 속도로 1등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금년에 꼴등하면 내년에 성장회복속도 1등을 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집니다. 내년 1등을 강조하는 것은 금년 낙제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한국경제는 작년 4.4.분기부터 최하위권의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3.4분기에 비하여 GDP(국내총생산)가 5.6% 감소하였습니다. 이를 네배 하면 연률로 22% 이상 경제가 축소된 것입니다. 제1차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4분기 이래 최악의 상황입니다. 작년 4.4.분기에 우리보다 더 빠르게 곤두박칠 친 나라를 저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인터넷으로 오래 검색하면 몇나라 나올지 모릅니다.) 중국은 물론 플러스 성장이고, 미국 -3.8%(연률임, 한국 -22%와 비교), 독일 -2%, 영국 -1.5%(연률 -6%), 싱가포르 -3.7%(연률 -13% 이상)등은 마이너스 성장을 발표했는데, 한국이 특히 심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1월22일 GDP 속보치를 발표하자마자 어느 관료(청와대인지, 과천인지 모름)는 “잘하면 금년 1.4분기부터 플러스 성장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죠.” 작년 4.4.분기 결과가 워낙 나빴던 만큼, 관료의 그런 코멘트도 할만한 이야기입니다. 다만 다수는 금년 1.4분기가 작년 4.4분기보다도 더 나쁠 것이라는 예측을 갖고 있지만요.
학교성적이 200명중 20등쯤 하다가 180등으로 내려갔다고 합시다. 그 다음에 조금만 노력해도 50등은 할 것이고, 그러면 180-50=130등이 오르니, 등수가 가장 많이 오른 학생이 될 수도 있는 거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20등에서 180등으로 추락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국경제의 성장률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대략 이런 학생의 경우와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1997년에 한국은 태국, 인도네시아와 함께 제1차 외환위기를 같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2008년에는 태국과 인도네시아도 겪지 않는 제2 외환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런 외환위기로 원화는 아시아 최악의 통화로 명명되었고,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미쳐, 10년여만에 최악의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겁니다.
경제성장률이란 통계가 이렇게 나올 때에는, 우리 주권자들의 삶은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긍정의 바이러스를 퍼뜨리자고요? 일부 세습재벌과 재개발, 재건축 투기세력을 제외하면 -20%의 경제위기에 웃을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고라에 올라오는 많은 분들의 글이 현실이 얼마나 고달픈가를 잘 보여주는 겁니다.
국내에서 경제예측을 잘 해야 할 기관은 한국은행입니다. 이미 12월에 글로 알려드렸듯이, 한국은행은 지난 12월 예측에 대한 시장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그러고서 나온 2009년 예상성장률이 플러스 2%이었습니다. 그런 한국은행의 이성태 총재가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외부강연을 하면서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마이너스 몇%라는 이야기입니까? 왜 그런 예측을 작년 12월초에는 안한 것입니까? 또는 못한 것입니까? 그래도 밖에 나와 한 말씀하시고 시장과 소통하려 하니 모양은 좋습니다. 선진국이라면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중요한 자리인데, 이총재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장관들보다는 높다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KDI(한국개발연구원)도 매분기마다 성장률을 예측해서 발표하는 연구원입니다. 그런데 작년 12월중순(또는 하순)에 발표되어야 할 예측치가 해를 넘겨
1월21일에야 발표되었습니다. 금년에 0.7%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예측발표를 미룬 것에 대해 정부 압력이 있었는지 왈가왈부가 많습니다.
IMF와 같은 국제기구나 민간 국제투자은행들도 평소보다 더 자주 수정전망을 냅니다. 경제가 빠르게 변하니까 예측에 대한 수요가 많고, 그만큼 빨리 전망치를 생산, 공급해 줄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한국의 예측기관들은 자꾸 늦추려만 하고 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이 명확히 밝혀주었습니다. 정부가 연구원을 “Think Tank'로 대접하지 않고 ‘Mouth Tank'로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 1월 30일, 31일자 관련 보도 참조하십시오. 꼭 읽으세요.)
은행을 재벌에 주면 경제가 망하는데, 그걸 합리화하는 연구물을 내놓으라는 압력이 컸던 모양입니다. 경제예측 시에도 비관적인 전망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거지요. 심지어 모재벌 증권사가 작년 11월초 -0.2%로 2009년 경제를 전망했다가 홈페이지에서 삭제하는 소동이 있었다네요. 그 뒤에 그 증권사는 2% 성장으로 최근 발표했다네요.
이게 선진국입니까? 이렇게 해서 선진국이 언제 되겠습니까? 경제학자는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연구소에서 일하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그중에서 예측에 관련된 일을 하는 분도 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경제학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정부가 3% 성장 목표를 하고 있으면, 현실경제야 어떻든 눈감고, 그것에 비슷한 숫자를 전망치로 발표하면 연구원장은 자리가 유지되고, 그러지 않는 자는 모두 갈아치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문가를 수족처럼 부리는 정권은 경제학자 알기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런 환경에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관변연구소나 재벌연구소에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오늘도 건강을 해쳐가며 월급쟁이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월급을 생산직보다 더 받는 것 외에는 언론자유가 없는‘노예 신분’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경제학자를 이렇게 취급하는데, 한국경제가 경제위기를 다른 나라보다 먼저 극복한다구요? 소가 웃을 일입니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필 확률이 더 높을 것입니다.
미네르바를 교도소에 가두고, 이동걸 박사를 원장 자리에서 내쫓고,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이구택회장을 POSCO에서 내모는 정부! 그렇게 최고 논객이든, 최고 경제지성이든, 최고 CEO든 다 힘을 빼앗고 나서, 제1외환위기 연루 인물들로 세계 제1로 위기를 극복하겠다? 아! 너무 기가 막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KDI, 금융연구원 또는 어느 재벌연구원.... 이중 어느 곳에서 2010년 세계전망을 했는지 나는 모릅니다. 어디선가 세계 각국의 전망을 해야,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1등이 나올 것 아닙니까? 제가 알기로는 국내에서 세계 각국의 전망을 독자적으로 하는 곳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이 내년에 가면 가장 먼저 회복한다고 외국도 우리도 보고 있다”는 대통령 말씀중 ‘우리’는 어디 있는 누구를 이야기 하는지 감이 안 잡힙니다.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어느 아첨꾼이 한 이야기인지, 압력을 넣어 어느 연구소에서 받은 전망자료가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그럼 외국으로 가볼까요? IMF, 세계은행 등이 선진국과 후진국을 모두 대상으로 하는 세계경제예측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IMF는 ‘원탁대화’ 바로 전날 금년 세계경제성장률을 0.5%로 전망하였습니다. 이 수정전망은 두달전 예측치 2.2% 성장에서 대폭 하향된 것입니다. 대공황이후 최악의 세계경제위기를 맞이하여, 어느 때보다도 경제예측하기가 힘든 때인지라 자주 수정된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작년 4월, 작년 10월, 작년 11월6일 그리고 지난주 1월 28일 IMF가 내놓은 예측치중 일부를 정리하여 아래 보여 드립니다.
IMF 예측변화 (World Economic Outlook, %, 전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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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발표일 2008.4 2008.10.2 08.11.6 2009.1.28
(예측대상연도) 2009 2009 2009 20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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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8 3.0 2.2 0.5 3.0
미국 0.6 0.1 -0.7 -1.6 1.6
유로지역 1.2 0.2 -0.5 -2.0 0.2
일본 1.5 0.5 -0.2 -2.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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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4.4 3.5
대만 4.1 2.5
홍콩 4.8 3.5
싱가포르 4.5 3.5
한대홍싱 4.4 3.2 2.1 -3.9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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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9.5 9.3 8.5 6.7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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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한대홍싱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합
표에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첫째, 2009년 예측치가 계속 하향 조정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세계경제는 3.8%(08년 4월)→ 3.0%(08년 10월) →2.2%로 하향 예측되더니 지난주엔 0.5% 성장으로 더 가파른 조정치가 발표되었습니다.
둘째, 한국등 아시아신흥국의 경우 4.4% → 3.2% → 2.1% 예측에서 지난주에는 놀랍게도 -3.9%로 선진국보다 더 나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작년 11월까지도 IMF는 한국등 4국경제가 선진권의 마이너스와는 달리 플러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하였는데, 연말을 지나면서 확 바뀐 것이지요. 한대홍싱(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합계)의 경제중 한국이 절반을 차지하니까 작년 10월 이후 국별로 별도 수정전망이 안 나온 부분은 크게 괘념치 않아도 됩니다. (예년대로라면 4월에 국별전망이 다시 나옵니다)
셋째, 2010년 내년 성장전망입니다. 한대홍싱의 성장률은 3.1%로 전망했는데, 이것이 미국, 유로지역, 일본보다도 높다고 으쓱댈 일입니까? 절대 그렇지 못한 일이지요. 2009년과 2010년을 합쳐서 보면 결국 한국등의 경제는 2년간 3%이상 빠졌다가 2008년 수준에 약간 못미치는 수준으로는 회복하겠다는 거니까요. 앞서 말씀드린 180등으로 떨어졌다가 50등으로 되는 학생이 친구든 부모에게 으쓱대겠습니까?
따라서 IMF는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빠른 회복을 하리라고 예측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인도 등 여러나라에 대해 한대홍싱보다 높은 성장률을 예측하였습니다. 그럼 어디에서 했단 말입니까? 대통령이 보고도 안 받고 소설을 쓴 것은 아닐 겁니다. 누군가 국내외 자료라고 하면서 공식적으로 또는 비공식으로 보고를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휼륭한 보고를 누가 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저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긍정의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넷째, 사실 2010년에 한국이 제일 빠른 경제회복을 할 것이라는 믿을만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위 표를 다시 보십시오. 작년 4월에 예측한 2009년 예측치는 한대홍싱의 경우 4.4%이었는데, 9개월후 이번 예측에는 -3.9%로 되어 있습니다. 무려 그 차이가 -8.3%포인트나 됩니다. 가히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게다가, 내년초가 되어야 2009년 실적이 나오고, 그때 나올 실적은 -3.9%보다 더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실제 2009년 경제성장은 4.4%보다는 -3.9%에 가깝게 나올 것입니다. 예측하는 시점에서 예측하려는 대상년도가 가까울수록 예측오차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2009년 예측에 대해 작년 4월에 한 예측을 제일 신뢰하기 어려웠듯이, 2010년 예측에 대해 2009년 1월 예측은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어느 경제예측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현재 어느 귀신같은 기관이 국내외에서 예측했어도 그 어느 것도 올해라면 모를까 2010년 예측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왜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경제예측의 한계에 대하여 잘 모르시거나, 나라주인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근거박약’이란 이유를 저소득층과 중산층 무시하듯 깡그리 무시한 것이거나, 또는 다른 이유가 있겠죠.
여러분은 어떤 이유라고 생각하시나요. (좋은 의견 부탁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말씀드리지요.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작년 11월24일 미국 교민을 만난 자리에서 “전대미문의 경제위기가 찾아왔지만 국민이 단합하면 3년이상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런 발언뒤 두 달이 지나서 이 번엔 “내년에 세계에서 제일 먼저 회복”하는 나라가 된다는 겁니다. 두 달이 지나서 3년이 1년으로 확 줄었습니다.
여러분, 긍정의 바이러스가 마음속에 들어옵니까?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대통령이란 주권자의 대표 심부름꾼이 직을 맡은지 2년차 되시는데, 시간이 갈수록 미덥지 못한 발언을 하셔서 불안의 바이러스가 들어오려 합니다. 주가지수 3천이 상기되는 것은 왜 그럴까요?
11월 하순부터 지난주까지 두달 사이에 국내외에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났습니까? 제1 외환위기 때보다 수출이 더 급격히 줄고, 환율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고, 빈곤층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생활고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발표된 12월 산업생산지수도 2007년 12월 대비 -18.6%나 폭락하여, 제1 외환위기 때보다도 나쁜 최악의 실적을 보였습니다. 제조업가동률도 62%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등 선진국 어디에도 눈에 띌 만한 좋은 경제뉴스는 없고, 실물경제의 위기가 2차로 다시 금융부문을 위협하는 상황이 정초부터 여러 나라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서명한 법안이 레드베터라는 할머니 노동자의 투쟁에서 비롯된 임금차별금지법이란 미국뉴스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한국에선 자영업 할아버지가 철거반대투쟁하다 돌아가시는 비극이 일어나고요. 또 최저임금을 삭감하겠다는 거죠.) 11월보다 상황이 나빠진 것은 위 IMF의 각국 예측치 하향조정으로도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11월에 3년 걸린다던 위기극복이 두달 지나 1년이면 될 정도로 가볍게 볼 상황 변화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겁니다. MB악법의 강행 추진, 그에 따른 여야 갈등과 사회 갈등으로 3년극복론(11월)의 전제조건이었던 ‘국민의 단합’은 더 어려워졌으니, 말이 제대로 되려면 이제는 4년, 5년 걸린다고 해야 될 겁니다. 그런데 왜 우리 대통령은 지난주 느닷없이 낙관론을 펴신 걸까요?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청와대에 오래 있을수록 현실과는 더욱멀어지고 아첨성 보고에 눈과 귀가 멀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건 이해합니다. 전임자들도 그러했으니까요. 그러나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이한 한국에서, 주권자들은 대통령의 그런 현실 파악 무능력을 참아낼 여유가 지금은 없습니다.
오호라! 3년이 1년으로 둔갑하는 혼돈 때문에 한국경제의 오늘과 내일이 더욱 불안합니다. 우리는 주권자로서 심부름꾼의 무능과 허풍에 마음을 빼앗기고 우왕좌왕해선 안 됩니다. 주인으로서 눈을 부릅뜨고 심부름꾼들을 감시하면서, 일자리와 재산을, 그리고 생명을 지켜내야 합니다.
출처 : 아고라 경제방
한국금융연구원을 떠나면서
(한국금융연구원 / 이동걸 / 2009-01-31)
저는 이제 한국금융연구원 동료 여러분의 곁을 떠납니다. 여러분과 인연을 맺은 지 만 9년, 원장의 직을 맡은 지 1년 반, 여러분과 함께 많은 일을 하며 때로는 같이 즐거워하고 때로는 같이 힘들어하고 때로는 같이 분개하기도 했던 값진 추억을 갖고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 그동안 여러분과 함께 금융연구원이 국내의 대표적인 금융정책 두뇌집단(Think Tank)으로, 또한 국내의 독보적인 금융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떠납니다.
1년 반 전, 제가 원장에 취임하면서 여러분께 말씀드렸습니다. 금융연구원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기관으로 한 단계 더 발전시키자고. 금융연구원의 발전은 국내 금융정책의 수준을 높이고 우리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그러나 이 일은 제가 원장으로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연구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원장의 몫은 여러분들이 소신껏 오직 여러분의 학자적 양심과 신념에 따라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일입니다. 때로는 외풍을 막아주고, 때로는 여러분을 대신해서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대항해 싸우는 일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의 입이 되고, 때로는 여러분의 손과 발이 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저는 지난 1년 반 원장으로서의 제 몫의 일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제 임기를 절반 밖에 채우지 못하고 오늘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을 더 이상 지켜드리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한갓 쓸데없는 사치품 정도로 생각하는 왜곡된 ‘실용’ 정신, 그러한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이제는 제가 더 이상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실패의 원인을 정책의 오류에서 찾기보다는 홍보와 IR에서 찾는 현 정부의 상황 판단 앞에서, 잘된 것은 모두 내 탓이요 잘못된 것은 모두 네 탓이라고 보는 현 정부의 인식 앞에서, 결정은 내가 할테니 너희들은 그저 일사불란하게 따라오기만 하라는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 사고방식 앞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비판의 잘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이 현 정부의 갈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니, 비판이 아니더라도 정부의 정책을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연구원이나 연구원장은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아마 제거되어야 할 존재인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률 예측치마저도 정치 변수화한 이 마당에 그것은 아마 당연한 일이겠지요.
돌이켜 보면 정부의 정책이 지금처럼 이념화된 적도 흔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책의 논의 과정이 생략되고 사고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 이처럼 철저히 무시된 적도, 아니 봉쇄된 적도 흔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에는 말입니다. 경제적 논리와 경험적 증거보다는 주의와 주장만 난무하는 무리한 정책,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정책,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기보다는 특정 집단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 그 앞에서 사고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 인정될 수가 없겠지요. 이에 근거한 활발한 정책 토론 또한 불편하겠지요.
여러 가지 사례를 들 필요도 없습니다. 현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살펴봅시다. 재벌에게 은행을 주는 법률 개정안을 어떻게 ‘경제살리기 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개혁입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국제적 조류라고 감히 주장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나라가 전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금산분리가 가장 철저한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그리고 일부 보수집단 금융이론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전세계 선진국에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가 가장 많이 허용된 나라입니다. 그 폐해도 가장 많이 경험한 나라입니다.
여러분들은 외국의 경우 은행이든 증권사든 보험회사든 산업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세계적 금융기관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직 산업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세계적 은행, 세계적 증권사, 세계적 보험사의 예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은행을 제외하면 증권, 보험 등 제2금융권의 주요회사들은 거의 대부분 산업자본 즉, 재벌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이래도 저희 나라가 전세계에서 금융과 산업이 가장 철저히 분리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불행히도 재벌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나라의 증권사, 보험사들은 비록 국내시장에서는 1류 행세를 하지만 국제시장에서는 2류, 3류 수준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재벌의 소유를 금지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증권사, 보험사가 세계시장에서 2류, 3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래도 재벌의 은행소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주장하기 전에 우선 재벌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증권사, 보험사를 국제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금융사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은행을 재벌에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마치 프리메라 리그의 꼴찌 축구팀에게 야구를 하도록 해주면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될 거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경제이론을 내세우기도 전에 이런 평범한 상식적 결론을 현 정부는 왜 진솔하게 인정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희 연구원으로서는, 그리고 저 개인으로서도 -- 원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금융학자로서 --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거를 도저히 만들 재간이 없습니다. 정부의 적지 않은 압력과 요청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하는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 개정안은 금융분야에서의 대운하 정책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번 국토를 파헤치고 나면 파괴된 환경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일단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되면 이를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환경파괴의 영향이 모든 국민에게 미치는 외부불경제성(external diseconomies)과 마찬가지로 은행의 사금고화도 금융체제 위험(systemic risk)을 높이는 외부불경제성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파괴된 환경은 사후 감독이나 제재로 쉽게 복구되지 않듯이 은행 사금고화의 폐해도 현 정부와 일부 보수 금융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후 감독이나 제제를 강화한다고 쉽게 방지되거나 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운하 정책이나 금산분리 완화정책이 쉽게 포기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정집단의 이익이 상식을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밖에 달리 결론지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삽질을 하다가 나중에 슬쩍 연결하면 대운하가 된다고들 합니다. 재벌의 은행소유한도를 4%에서 10%로 올려 일단 발을 들여놓고 나서 나중에 슬쩍 조금만 더 풀어주면 되니까 이것도 닮은꼴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우리의 경제위기로 키우고 있는 정부의 거듭된 오판과 실정이 또 다른 사례가 되겠지요. 전국민이 합심해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총력 대응해도 부족할 때입니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진지한 논의를 거쳐 국민의 의지가 정책으로 결집되어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허심탄회하게 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좌-우, 진보-보수, 네 편-내 편, 네 탓-내 탓 가르기에 집착하다 보니 정부의 관심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정부는 다양한 의견의 자유로운 표출과 논의를 막고 싶은 것 같습니다. 위기상황에 대한 판단마저도 정책적으로 왜곡되고 수시로 번복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책대응에도 실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상충되는 정책이 남발되는 것 같습니다. 위기는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연구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이럴 때 연구원 동료 여러분의 곁을 떠나는 제 심정도 착잡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법에 규정’된 원장의 임기를 부정하는 ‘법치’ 정부의 이중 잣대(double standard) 앞에서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달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 원장의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희생하는 대가로 연구원의 원장직을 더 연명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원장의 직은 제 개인의 영달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원의 발전을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서 제 후임으로 어떤 분이 오실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어떤 분이 원장으로 오시든 여러분께서는 동요하지 마시고 조용히 연구에 매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여러분께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연구원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원장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원장으로 재임했던 기간 중에도 연구원을 이끌어 왔던 것은 제가 아니고 여러분이었습니다. 저는 단지 여러분을 도와드리는 역할만을 하였을 뿐입니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정부의 요구에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 됩니다. 금융연구원의 품격을 유지해야 합니다. 금융연구원에 대한 외부의 신망과 신뢰를 유지해야 합니다. 긴 세월을 두고 보면 그래야만 우리 금융연구원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국가와 국민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한동안 쉽지 않은 시절이 금융연구원에도 올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인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이 세상에 젖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여러분이 겪는 어려움이 금융연구원의 꽃을 피우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비록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는 하지만 동료 여러분을 아주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뜻을 같이 하는 학자들이 한 평생을 같이 하듯 저는 여러분과 평생을 같이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동료로서 또한 선배로서 저는 금융연구원을 떠나서도 금융연구원의 발전을 위해 여러분과 같이 노력할 것입니다. 금융연구원을 금융연구자들의 품으로 되찾을 때까지.....
2009년 1월 31일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이동걸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4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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