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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꺼리

체게바라 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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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는 그들처럼


과테말라에서는
과테말라인처럼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인처럼
페루에서는
페루인처럼 느껴졌다

나의 삶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여행

여행에는
두 가지 중요한 순간이 있다
하나는
떠나는 순간이고
또 하나는
도착하는 순간이다
만일,
도착할 때를
계획한 시간과 일치시키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말라

 

 

라틴 여행기를 쓰며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동전이
허공에서 돌고 돈다
때로는 앞면이 나왔고
때로는 뒷면이 나왔다

인간은 모든 것들의 기준이다
나는
내 입으로 말하고
내 눈으로 보았던 것을
내 자신의 언어로
구체적으로 말한다
가능한 열 번의 앞면 중에서
나는
오직 한 번의 뒷면만 볼지도 모른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변명은 필요없다

내 입은 내 눈이 본대로 말한다
우리의 견해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져
편향되거나 성급하지는 않은가?
우리의 결론이 너무 완고하지는 않은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죽어서
아르헨티나의 흙으로 돌아가리라
하지만
그것을 재구성한 사람으로서의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닌 것이다!


나환자촌

칼차키에스 계곡
순수한 신앙이 깃든 하얀 교회
그리고 오래된 돌들이 풍기는 향기
내가 만일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고고학자가 되었으리라
더 있다
보아야 할 것이 더 있다
산중에 쓸쓸히 서 있는 오두막
계속되는 굶주림과 수탈
벼룩...
저주받은 것들
사방에 버려진 넝마주의 아이들
허망한 꿈에 젖은 눈동자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
영양결핍으로 불룩 튀어나온 배
그리고 아메리카...
나환자들과 맹인들을 치료하며
나병은 전염되지 않는다고 안심시켰다
그들과 축구도 하고 산책도 했다
또 사냥도 떠나 짐승들을 잡아오기도 했다
우리가 나환자촌을 떠날 때
그들이 뗏목을 만들어주었다
그 뗏목에 '맘보 탱고'라고 이름 붙였다
또 송별 파티도 열어주었다
비가 내렸지만,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강기슭의 나환자촌이 점점 멀어져갔다
손을 흔드는 아마존 밀림 속의 맹인들...

베일 속의 사내

그 사내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광채와
네 개의 하얀 앞니만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미래는 민중들의 것입니다
서서히, 혹은 갑자기
전세계의 모든 민중들의 권력을 잡을 겁니다
당신은 이 사회에 나처럼 아주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당신을 파괴시키는 이 사회에
당신 스스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날 밤,
그 사내의 말들이 밤새도록 내 가슴 깊이 울렸다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만일,
어떤 지도자가 이 세계를 두 개로 나눈다면
난 기꺼이 민중들 편에 설 것임을,
그리하여
귀신에 홀린 듯 울부짖으며 온몸으로
적진의 바리케이드와 참호를 공격할 것이고
분노를 내뿜으며 무기를 피로 물들일 것이고
내 손에 잡힌 그 어떤 적이라도 단숨에 깨부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껏 내 코를 팽창시켜, 유유히
매운 화약냄새와 낭자한 적들의 피 냄새를 음미하리라

그런 다음 또 다시 내 몸을 바짝 긴장시킨 채
다음 전투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리라
열광하는 민중들의 환호성이
또 다른 새로운 곳에서 힘차게 울려퍼질 수 있도록


말의 힘

나는 깨달았다
단 한 사람이나
단 한 사람의 말이
순식간에 우리를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정상으로 올려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탐독

올바른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해적과 달'은
라스콜리니코프로 길을 열어주었다
엘리샤에서 네루다까지
그리고
열띤 토론은 또 다른 책을 탐닉케 했다
스테판 츠바이크,
보들레르와 세익스피어
엥겔스와 도스토예프스키
크로포트킨과 트로츠키
폴 발레리와 가르시아 로르까
그 외 많은 아나키스트들,
레온 펠리페의 '훈장'
레닌의 '유물변증법'
모택동의 '신중국론'
사르트르의 '벽'
마르크스의 '경제학, 철학수고'
네루다와 랭보
...

특히,
마야코프스키와
네루다의 시에 탐닉했다


참된 삶

북미의 백만장자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문맹의 인디언이
되는 게 낫다


그녀

희미한 불빛 아래
신비로운 환영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그녀를 느낄 수 없다고
깨달은 이 순간까지도
그녀를 사랑했다고 믿었다
나는 그녀를 떠올리기 위해
그녀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싸워야 했고
그녀는 나의 것이었다
나의 것!
나의...

나는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질투
-나의 연인 치치나에게

날마다 피를 토할 듯이 기침을 하자
내 몸을 걱정하던
한 연약한 매춘부의 위로의 키스가
문득,
여행 떠나오기 이전의
내 잠자던 기억을 귀롭혔다

모기떼가 잠들지 못하게 하던 그 날 밤
비록,
이제는 아득한 꿈이 되어버린
치치나를 생각했다
끝나버린 꾸미라 하기에는
너무나 즐거웠기에
씁쓸함보다는 달콤함으로 남아 있는
그녀가 그리웠다

나는 치치나에게
그녀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오랜 친구처럼
따뜻하고 잔잔한 키스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내 마음은
새로운 청혼자에게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속삭이고 있을 그녀의 집으로 날아가
깊은 밤의 어둠 속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내 머리 위의 거대한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들은 마치
'이것은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라는
내 가슴 깊은 곳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바다

보름달이 바다에 그림자를 비추고
파도가 은빛으로 부서지며 철썩거렸다
우리는
바닷가의 모래 위에 앉아
끊임없이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을 바라보며
서로
다른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나는
바다를 언제나 절친한 친구로 생각했다
비밀을 누설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항상 가장 좋은 충고도 아끼지 않는
그런 친구 말이다

 


핀셋

혁명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의사와 같은 것이다
혁명은
핀셋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핀셋을 요구할 때는
망설임 없이 사용한다
해산의 고통은
더 이상
잃을 것밖에 없는 자들에게
보다 나은 삶이라는
희망을 안겨다준다

역사는
망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다
폭력은
착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피착취자들 역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단지,
적절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마르티는 이렇게 말했다
싸움을 피할 수 있는 데도
싸움을 하는 자는 범죄자이다
그런 자는
피해서는 안 될 싸움에는
꼭 피한다


쿠바

나는
쿠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편지
-아버지에게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가
저를 부릅니다
레닌의 말들이
절절이 울려오는
쿠바의 그 풍광으로
제 가슴을 가득
채우고 싶습니다

아버님,
저는 지금
아바나로 갑니다


동참

의지와 신념만 있으면 행운은
무조건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믿는
젊은 지도자 카스트로가
자신의 혁명 대열에 합류하자고 했다
그는
무장투쟁으로 자신의 조국을
해방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물론 동참하겠다고 했다
나에게도 행운이 따라올지 모르겠다
이제 그곳에서 나는
방랑하는 기사의 망토를 벗어버리고
전사의 무기를 받아들임으로써
빗발치는 총알 속을 누벼야 하리라


희망

게릴라로 싸우는 동안에도 물론
심지어 지금까지도
카스트로의 이야기는
내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당신들은 아직
당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무기를 방기한 게릴라로서의
지불해야 할 대가는
바로 목숨이기 때문이다
적과 직접 부딪쳐 싸울 경우
살기 위해 의지해야 할
유일한 희망은
바로 무기뿐이다
그런데 그 무기를 버리다니!
그것은
처벌받아 마땅할 범죄이다

단 하나의 무기,
단 하나의 비밀,
단 하나의 진지도
적들에게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선택

적의 급습을 받은 동지 하나가
상황이 위급하다며 지고 가던
상자 두 개를 버리고
사탕수수밭 속으로 도망가버렸다
하나는 탄약상자였고
또 하나는 구급상자였다

그런데,
총탄에 중상을 입은 지금의 나는
그 두 개의 상자 가운데
하나밖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의사로서의 의무와
혁명가로서의 의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깊은 갈등에 빠졌다

너는 진정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지금
내 발 앞에 있는
두 개의 상자가 그것을 묻고 있다

나는
결국 구급상자 대신
탄약상자를 등에 짊어졌다

 

고통

오늘 전투에서
적군을 사살했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인 건
처음이었다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심장을 정확히
맞추려고 애썼다
적이라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죽이지 않는 게 좋다


괴테 전기

내 중대에 간호병으로
새로 들어온 여성대원
하이디 산타마리아에게
괴테 전기를 빌려 읽었다
기억해 둘 만한 구절에
밑줄을 쳤다

"극도로 예민한 사람만이
아주 차갑고 냉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둘러싸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그 껍질은
총알도 뚫지 못할 만큼
단단해진다..."


편지
-부모님께

내 생의 한가운데에서
나의 진실을 찾아 헤맸습니다
때로
헛된 고생도 했지만,
그라나
바로 그 와중에서
나를 영원으로 이끄는
한 여자를 만나
이제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나의 죽음을
어떠한 경우에라도
절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것은,
때때로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시

멕시코 혁명은
죽었다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휴가

오늘 한 혁명동지가 나를 찾아와
고향의 가족을 만나러 가고 싶다고
1주일간만 휴가를 달라고 했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가 말했다
"우린 이제 혁명에서 이겼지 않느냐?"
내가 대답했다
"우리가 이긴 건 혁명이 아니라,
파쇼와의 전쟁이야.
혁명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야!"
"..."
사랑하는 가족의 품이 사무치도록
그립다는 걸 난들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시간을 아껴야 한다
가족은 자기 사무실에서 만나도
충분하지 않는가

 

편지
-어머니에게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쓰러뜨리긴 했지만
저는 제가 가야 할 길을 찾아 애쓰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외롭고 고독할 뿐입니다
지금 저에게는
아내도,
자식도,
형제도 없으며
친구 역시
사상이 같을 때만 친구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지금 제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새로운 무엇인가가 생명처럼 솟아나고 있습니다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 같은 것 말입니다
사실 이런 느낌은 예전부터 있어오기는 했지만
이제 저 혼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그런 생명의 힘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당해야 할 숙명적인 임무는
그 어떤 힘겨운 고통도 씻어주기에 충분합니다

어머니,
지금 제가 왜 이런 편지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알레이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이 편지를 씁니다


나의 손끝

아름다움과 혁명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을
아무렇게나 만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아름다움과 혁명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손끝에 있는 것이다


권리

오늘 자전거 공장 노동자들이
자기들 손으로 만든 자전거를
특별히 싼값에 구입하게 해달라는
제안서가 올라왔다
나는 사인을 하지 않았다

노동자가 물건을 직접 만들었다고 해서
그 물건에 대한 권리까지 갖는 것은 아니다
빵 공장 노동자라고 해서
남들보다 빵을 더 많이 가질 권리는 없으며
섬유 공장 노동자라고 해서
실 한 가닥이라도 그냥 가질 수는 없다
모든 것은 거짓없이 공평해야 하고
누구이든 특별대우는 없어져야 한다


성공론

노동자들이여,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
자본가들이여,
열심히 착취하면 성공한다!

그 노력과 착취로 성공한 대가가 바로
굶주림과 불평등으로 얼룩진 이 세상이다
독재와 제국주의가 사라지지 않은 성공은
어떠한 행복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 성공은
남의 실패를 짓밟고 올라온 성공이요,
그 행복은
남의 불행을 짓밟고 올라온 행복일 뿐이다




보수를 지불한다는 것은
아주 못된 관습이다
그런 관행은 자본주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
사회주의 단계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
돈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쓰레기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 돈이 없어지고
보수의 지불이라는
관행도 사라질 때
우리는 비로소
이상적인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온건

온건이란 말은
제국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말 중 하나다
온건주의자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
혹은,
어떤 형태의 배신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킬 뿐이다
민중은,
결코 온건하지 않다


새로운 인간

진정한 혁명은 인간 내부에 있다
이웃에게 탐욕을 부리는 늑대 같은 인간은
혁명가가 될 수 없다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사랑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제는
'새로운 인간'의 시대다
도덕적인 동기에서 일을 시작하고
끊임없는 실천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질 때까지
자신의 목숨마저도 바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인간이다


조건

민중의 힘은
적과의 싸움에서
질 수 없을 만큼 강해진다
우리는
혁명적 분위기가
단순히 무르익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폭동은
그런 분위기를 스스로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발톱

세계의 자유인들은
콩고에서 일어난 범죄행위를
마땅히
보복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미몽에서 깨어나
새로운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지난날의 식민지 상태에서는
깨닫지 못한 것들을 비로소 깨닫고 있다

그것은 서구문명의 화려한 무대 뒤에
하이에나와 쟈칼의 날카로운 발톱이
감춰져 있음을,
그 발톱이
가련한 민족들을 뜯어먹고 사는
백인 제국주의자들의 유일한 무기임을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싸움의 이유

국건한 이념은 고도의 기술도 무너뜨릴 수 있다
전쟁에 충실한 미군들의 최대 약점은
그들의 맹목적인 전쟁관에 있다, 그들은
자기들과의 전쟁에서 죽은 자들만 존경할 뿐이다
그런 자들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단지 무모한 희생만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오로지 투쟁만이 미국을 물리칠 수 있다
이 투쟁은
단지 최루탄에 대항하여 돌을 던지는 시가전이나
평화적인 총파업이어서는 안된다
또한 괴뢰정부가 흥분한 민중에 의해
불과 며칠 사이에 붕괴되게끔 하는 것
그런 싸움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 투쟁은 장기적이어야 하며,
또 적들로 하여금 충분히 고통스럽게 해야 한다
이 투쟁의 전선은 게릴라들이 잠복하는 곳,
바로 그곳이다
도시의 중심,
투사들의 고향,
농민들이 학살당하는 곳
적들의 포화에 파괴된 마을과 도시들이
바로 전선인 것이다

적들이 우리로 하여금 싸우지 않을 수 없도록 하였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오직 싸울 준비를 하고
그 싸움을 시작할 결단만 내릴 뿐이다


멈출 수 없는 싸움

새로운 세상을 위한
우리의 투쟁은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는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남의 일처럼 외면해서는 안된다

어느 한 나라에서의 승리는
곧 우리 자신의 승리이고
그 나라의 패배는
곧 우리 모두의 패배이므로


권력의 악취

파쇼와 제국주의자들과 싸우다 보면
은연중 그들의 억압 방식에도 길들여진다
그래서 나중에는 새로운 세상이 와도
파쇼의 탄압과 자본가의 착취방법을 전수받아
그대로 노동자와 농민에게 적용시키려 한다
권력을 유지하는 데 효율적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그것을 보고 있다

권력자의 생리는, 마치
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어서
늘 사람들의 생명만 위협할 뿐 구할 수는 없다
노동자들이 엔진을 만들어주면 제멋대로 몬다
또 비키지 않으면 깔아뭉갤 듯이 빵빵거린다
더운 여름엔 정장이고 추운 겨울엔 셔츠만 입는다
착취가 전매특허인 자본가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우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감시해야 한다
방심하는 순간 우리의 피땀은 단숨에 무너진다
차가운 지하에서 전사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내 안의 파쇼

동지들이여,
나 역시 내 안의 파쇼가
전혀 없다고 말하지 않겠다
아니,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을 지 모른다
내가 나를 어찌 다 알겠는가
내가 나를 어찌 다 통제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들고 있는 이 총구를 본다
그 좁고 컴컴한 구멍이
마치 내 가슴속처럼 보인다
총알이 하나씩 빠져나갈 때마다
내 안의 파쇼도 하나씩 빠져나가리라


다양한 지성

타인의 주장을 깨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내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과
또 하나는
타인의 주장을 경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힘으로는
결코 타인의 생각을 깰 수 없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자유롭고 창의적인 지성도
사라질 것이다


개인이기주의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세상이 오더라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개인이기주의다!
그것은 감기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어서
늘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전염시킨다
전염경로인 공기와 물을 없앨 수도 없다
오직 마음을 개조시키는 정신혁명뿐이다
그것은 인류 최고의 무기인 사랑이다!
그 사랑은
만능열쇠처럼 어떠한 것도 열 수 있다


사랑

민중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정의감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대함 없이는
진정한 혁명가일 수 없다


쿠바를 떠나며

기쁨과 슬픔을 안은 채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이 쿠바를 떠납니다

내가 이루고 싶었던
그 많은 희망들 중에서
가장
순수한 희망만을 남겨놓고
나는 떠납니다


카스트로에게

나는
이 시간부터
내가 갖고 있는 당의 직책과
장관직, 사령관 그리고
쿠바 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합니다

또 다른 곳에서
나의 보잘 것 없는 힘을
요구하고 있어
나는
내 사랑하는 쿠바를 떠납니다


행복

나는 아내와 자식에세
그 어떠한 물질적 부와 명예도
남겨놓지 않았으며
또한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것을 행복으로 여깁니다


어린 딸에게

지금도
이 세상의 어느 누구인가가 당하고 있을
그 모든 불의에 맞설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혁명이 왜 필요한지,
너희들 스스로 깊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것이
혁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세란다


어머니에게

저는
다시 한번
로시난테의 등에 몸을 싣고
무기와 방패를 들고
여행을 떠납니다

저는 억압된 자신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무장투쟁만이 유일한 길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진실을 증명하는 것 역시
목숨을 던져 싸우는 것밖에 없음을 믿습니다

어쩌면,
이 편지가 어머니에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진실로 사랑했습니다
다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입니다
제가 비록,
융통성은 부족할 지 모르나
진실만큼은 넘쳐흐른다는 것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동안 예술가와 같은 열정으로 단련된
나의 의지가
약한 닫리와 피곤한 심장을
지켜주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가끔은,
20세기의 모험을 위해 대장정에 오른
이 못난 자식 생각도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비틀즈

마치 망명하러 온 사람처럼
나는
프라하의 한 아파트에 은신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테차를 마시며
휴대용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비틀즈의 노래를 듣는다
저 음표 어딘가에
세계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숨어 있으리라
Yesterday...
그란마를 타고 쿠바에 상륙한 날
산타클라라를 점령한 날
그리고 아바나에 입성한 날...
모두 주마등처럼 스친다


행복한 혁명가

쿠바를 떠날 때,
누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씨를 뿌리고도
열매를 따먹을 줄 모르는
바보같은 혁명가라고...

내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도 아닐 뿐더러
난 아직
씨를 더 뿌려야 할 곳이 많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한 혁명가라고...


불꽃

문득,
니콜라스 구이렘이 쓴
'오르노스의 돌'이라는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은 처음 큰 거사를 시작할 때
이미 마지막 죽음까지도 예상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돌 위에 돌을 쌓는다
각각의 돌들이 불꽃을 일으킨다


어머니의 생일

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이다
나 때문에 언제나 두 손 모아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애처로운 모습이 자꾸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
언제쯤이면,
꽃처럼 환하게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이틀 내내
이빨이 아픈 대원들을 치료했다
그리고
오후에 출발해 한 시간 정도 행군했다
이 전투에서 나는 처음으로 노새를 탔다
여기는
해발 1,200미터
생각만큼 밤이 춥지 않아서 다행이다
의약품이 또 부족하다
피를 토할 듯 밤새도록 기침을 했다
잠은 별빛처럼 쏟아지는데
끝내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딸의 생일

오늘은
일디타의 열 한 번째 생일이다

나의 딸 일디타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난 날
꿈속에서
일디타는 가슴에
꽃을 한아름 안고
나에게로 걸어 왔었다


나의 생일

오늘은
내 서른 아홉 번째 생일이다
세월은 아무도 사정을
봐주지 않는 모양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서
나는
이제 게릴라로서의
미래의 '나'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타협할 줄 모르는
완전한 게릴라일 뿐,
그 어떤
목숨의 대가도
바라지 않는 혁명군일 뿐,


영원한 승리

나는
예수도 아니고
박애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적들이
나를 십자가에 못박기 전에
손에 닿는 모든 무기를 들고
그들과 싸울 것이다

독재와 싸우는 혁명이라면
그 어떤 혁명에라도 참가할 것이다

영원한 승리를 위해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새로운 길을 만들면서
노동절을 맞았다
아직도
우리는 강이 갈라지는 곳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아바나에서 연설을 한 알메이다는
나와 볼리비아 게릴라부대에게 찬사를 보냈다
조금 길긴 했지만 좋았었다
3일분의 식량이 남아 있다
냐토가 새총으로 작은 새를 잡았다
우리는 이제 새를 먹기 시작했다


목욕

오늘,
드디어,
목욕을 했다
6개월만에 처음이었으니,
오늘의 중요한 행사였다

이 기록은
내가 세운 것이지만
그 기록을
깰 만한 대원들도 더러 있다

기록은 깨는 것이다


또 다른 베트남

나는 필리핀에서 온
장문의 메세지를 해독했다
라울은
베트남 민중들을 기만하는
체코인들의 비방 기사를 비판했다
요즘은
동지들이 나를
'새로운 바쿠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동지들은
만약 또 다른 베트남이 생길 경우
지금까지 흘린 피도 모자라
또 피를 흘리게 될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분노와 울분으로 몸을 떤다


외로운 싸움

우리의 좌우명은 제2, 제3
그리고 더 나아가
수많은 베트남을 창조하는 것이다
외국 국기가 펄럭이는 차가운 땅에
우리가 흘린 이 핏방울들은
먼 훗날
우리 해방 조국의 동포들이 열어갈
새로운 세상의 밑거름이 되리라

갑자기 죽음이 우리를 덮칠지라도
이 투쟁의 함성이
단 한 사람의 귀에라도 들리는 한
우리는
기꺼이 그 죽음을 받아들이리라


갈증

날씨가 흐리고 슬픈 날이다
목이 말라서 카라코레빵으로 갈증을 달랬다
갈증으로 고통받는 목을 잠깐씩 속이는 것은
정말 할 짓이 못된다
그래서 파블리토가 권총을 차고
사냥꾼 하나와 물을 찾으러 갔다
그러나
돌아와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또 다른 대원들이 찾아 나섰지만
끝내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무진장 노력하며 견딜 만큼 견디다가
어쩔 수 없이 암말 한 마리를 잡았다
갈증으로 온몸이 바짝 말라가다 보면
배고픈 것은 차라리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내일도 물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성찬

원숭이 2마리
앵무새 1마리
비둘기 1마리

대원들이 사냥해온 고기로
저녁 식사를 했다
성찬이었다

날이 갈수록
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식량도 부족해
몸이 쇠약해져 갔다
나는
다리에 종기가 나기 시작했다


대장의 접시

식량이 부족해 배가 고플수록
분배에 더욱 세심해져야 한다
오늘,
얼마 전에 들어온 취사병이
모든 대원들의 접시에
삶은 고깃덩어리 2점과
말랑가 감자 3개씩을 담아주었다
그런데,
내 접시에는 고맙게도
하나씩을 더 얹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취사병에게 접시를 던지며 호통쳤다
"이 아부꾼아,
지금 여기서 당장 나가!
넌 밥 먹을 자격도 없어!
네놈이 적군한테도 이렇게 인심쓰듯
총을 쏘아댈 수 있는지 두고보겠다!"
나는,
취사병의 무기를 빼앗은 다음
캠프 밖으로 추방시켜버렸다

그는,
단 한 사람의 호감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평등을 모독했다


자살특공대

키가 작아 '꼬마 카우보이'라는 별명을 얻은
로드리게스 대위가 오늘 전사했다
100명의 대원을 한꺼번에 잃은 심정이다
꼬마 카우보이는 자살특공대의 지휘자였다

지원자 중에서 선발하는 이 자살특공대는
혁명 정신의 산 표본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대원이 전사해 후임자가 결정되고 나면,
선발되지 못한 다른 지원자들은
선발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망하고 슬퍼한다
심지어,
남들보다 먼저 전사할 영예를 누리지 못해
서럽도록 눈물까지 흘리는 대원을 보노라면,
죽음에 익숙해진 나도
정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일곱 개의 목숨

가슴과 허벅지에
총알이 뚫고 갔다

'고양이의 목숨은
일곱개'라는
스페인 속담이 있다
나는 이제
두 개의 목숨을 썼지만
아직,
다섯 개나 남아 있다


헬멧

전투가 끝난 다음
나는 적군 장교의 헬멧을
마치 월계관처럼 쓰고 돌아왔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적군으로 안 보초가
나를 향해 자동소총을 쏘았다
총알 하나가 내 귓가를 스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동소총은 그 한 발로 끝나버렸다
이미 방아쇠를 당겨버린
보초의 하얗게 질린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이후로 나는 헬멧을 쓰지 않았다


총구의 방향

대원 두 명이 총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고
다른 대원들은 총을 안고 잠을 자고 있다
코 고는 소리들이 요란하다
모두 야간행군을 했으니,
그 피곤함이야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소리가 유난히 큰 대원들은
보안상 탄피로 코를 막아주었다
또 몸이 찬 대원들은 모포로 더 덮어주었다
잠꾸러기 내 딸 일디타도
늘 이불을 걷어차곤 했는데...

아마 지금쯤
정부군 병사들 역시 이 근처 어디선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총대를 움켜쥔 채 두려움에 떠는 그 어린 병사들도
알고보면 모두 사랑하는 우리의 형제들이 아닌가
총구의 방향은 결코 거기가 아닌데...
하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쫓고 쫓겨야만 한다
그리고 서로의 가슴을 향해 총구를 겨눠야만 한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민중의 눈동자들도
저렇게
반짝일 수만 있다면...


시계

오늘은
우울하고 슬픈 날이다
총알이 뚜마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가 죽음으로써
나는
지난날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었던
한 동지를 잃었다
모진 고난 속에서도
그는 나에게 늘 진실했었다
지금도
내 자식을 잃은 듯한 심정이다

그는 죽을 때
곁에 있던 동지들에게
나에게 자기 시계를 주라고 부탁했다
그 말이 그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그의 시신을 말에 태워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땅속에 묻고 돌아왔다

나는
이 전투 중에도
항상 그의 시계를 차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그의 아들에게 꼭 전해주리라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팬티

전투에서 뚜마를 잃던 날
사냥꾼으로 위장한
스파이 2명을 잡았다
헌병 중위와 사병이었다
심문을 마치고
쓸 수 있는 것은 모두 압수하고
풀어주라고 했다

대원들은
팬티만 입혀서 돌려보냈다


착시현상

아침 6시 정각,
기상시간에 한 대원이
계곡으로 낯선 사람들이 온다고 말했다
나는 즉시,
모든 대원들에게 무장하라고 소리쳤다
안토니오도 사람들을 똑똑히 보았다면서
5명이라고 손가락까지 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두 대원이
헛것을 본 웃지 못할 소동이었다
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안토니오를 추궁했다
그는
보초 서다가 잠든 적도 있어서
6일 동안 보조취사병으로 일하며
스스로를 체벌하기까지 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단지,
수면부족으로 피곤할 뿐이라고 말했다


기적

게릴라 부대를 만든 지
벌써 11개월이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어쩌면 기적에 가까웠다
날마다,
총알이 우리를 피해갔다
내일도 피해갈 수 있을까...
내일이 오기나 할까
일기장을 덮고
작은 손전등을 껐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일기를 쓸 수 있을까

초승달이 떴다
산짐승들의 소리가
죽음의 발자국소리처럼 들렸다


결정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는
내가
천식이 아주 심할 때다
그때,
내가 가장 신중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중대한 기로

밤에 대원들이 다 모였다
우리의 상황은 어렵고
부상당한 파초는 다행히 회복되었으나
나는 건강이 너무 나빠졌다
내가 가장 아끼는 암말이 느리다고 목에 칼을 찔러
상처를 휘저어버린 끔찍한 망나니짓만 보아도
내 감정을 스스로 얼마나 통제하지 못하는가를
대원들에게 단적으로 보여준 증거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대원들의 어깨도 무겁다
끝까지 견디지 못할 사람들은 지금 말하라고 했다

지금은 각자가 아주,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순간들의 투쟁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인간,
바로
그 혁명가로 만들어주는 기회인
동시에,
진짜 사나이로서도 거듭 태어나게 해준다
혁명가가 되든
진짜 사나이가 되든
어느 하나라도 자신이 없는 사람은
당장 총을 내려놓고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중대한 기로에서조차도
대원들 간에 사소한 언쟁이 벌어졌다

나는 대원들이
혁명가로서의 의지가 자꾸 나약해지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연 조직 내부의 문제인가?
아니면,
각 개인의 성격문제인가?

지금은
우리 모두가
보다 혁명적이고,
보다 모범적인 대원으로,
거듭 태어나야 할 절실한 순간이다


절망

대원들은 모두 물이 부족해 자기 오줌을 받아마셨다
동굴 속에 감춰둔 비상식량과 의약품도 다 발각되었다
사실된 다른 부대원들의 시체들이 강물 위로 떠내려왔다
돌아가는 정세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적들과 맞서 싸울 수도, 그렇다고 마냥 숨어있을 수도 없었다
대원들도 가끔씩 사냥을 하며 밀림 속을 배회할 뿐이었다
난 더욱 악화된 천식발작으로 말꼬리를 붙잡고 행군해야 했다
게다가 불시에 극심한 호흡장애까지 일으켜 숨이 막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대원이 소총 개머리판으로 내 가슴을 힘껏 쳐야 숨통이 트였다
숨통이 트이면 이번엔 또 복통이 찾아와 바닥을 기었다
대원들도 모두 영양실조와 병에다가 전의마저 상실한 듯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부지할 마지막 기회를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적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먼 저편


-미래의 착취자가 될 지도 모를 동지들에게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 맹세가 하나 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도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리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줌도 안 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 착취자들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유언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게
저항하라!
지금
나의 이 실패는
혁명의 종말이 아니다!

그리고
이 말을 꼭
카스트로에게 전해달라

내가 패배할지라도
승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에베레스트산은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다 실패했지만
결국은 정복되고 말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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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과테말라에서 혁명가가 되고 쿠바에서 싸우다가 볼리비아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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